교회소식
교구5·18 광주 민중 항쟁 미사
- 작성자 : 관리자
- 등록일 : 2013-05-21
- 조회수 : 653
5·18 광주 민중 항쟁 미사
2013년 5월 20일 19:30
광주 남동 본당
+ 평화를 빕니다.
80년 5월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지워지지 않는 깊은 상처로 남아있습니다. 어린 자식을 남겨놓고 5월의 영령이 되어버린 아버지, 어머니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금쪽같은 자식들을 먼저 5월 제단에 바치고 아직도 당신들의 가슴에 품고 있는 아버님 어머님들, 같은 피를 나눈 형님, 누나, 동생들을 5월의 총탄에 먼저 보낸 형제들의 애절한 가슴은 아직도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또한 그 때 함께 하다가 살아남으신 분들 역시 먼저 가신 분들을 지켜주지 못하고 혼자 살아남았다는 부끄러움과 죄책감으로, 그리고 그 때 입은 부상과 고문의 후유증으로 아직도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더 큰 아픔은 5·18 광주 민중항쟁은 민주화 운동으로 국가가 공식적으로 기념하고 있음에도 몰지각한 사람들이 북한에서 내려온 무리들의 사주를 받아 일으킨 폭동으로 왜곡 비방하는 언동과 일부 언론들이 이 땅의 민주주의와 인권과 정의평화를 위해 희생한 5월의 숭고한 뜻을 무참히 짓밟고 있다는 것입니다.
엊그제 5·18 기념식에서 박 대통령은 "민주주의의 궁극적 목적은 국민행복이고, 정부는 국민통합과 국민행복의 새 시대를 열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또한 "가족을 잃고 벗을 떠나보낸 그 아픈 심정은 어떤 말로도 온전하게 치유 받을 수 없을 것"이라며 "5ㆍ18 국립묘지를 방문할 때마다 가족들과 광주의 아픔을 느낀다."고 위로했습니다. 대통령의 이 위로와 통합의 기회에 “임을 위한 행진곡”이 포함되었다면 그 진정성이 더욱 분명히 드러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행정 실무자들의 과잉 행동 때문에 대통령의 광주 첫 방문의 의미를 격하시킨 점과 지역민들의 소박한 열망을 외면함으로써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된 것에 대해 담당자들은 뼈아픈 반성을 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 스스로도 5월의 정신들을 희미하게 만들거나 무가치하게 만드는 처신을 하고 있지는 않는지 반성해보아야 하겠습니다. 5월의 아픔을 과거에 일어난 비극으로만 묻어둘 것이 아니라 미래의 희망을 위한 징검다리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5월 정신을 생생하게 되살리고 계승하여 우리 스스로가 그러한 정신으로 살아감으로써 우리 가운데 정의와 평화가 흘러넘치도록 합시다. 우리 지역민들과 함께 호흡하고 있는 우리 신앙인들은 5·18 정신을 복음의 정신과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신앙 안에서 승화시켜 생활화하는데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서른셋에 인류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형으로 돌아가셨지만, 동시에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곧 부활로 연결되었습니다. 우리도 광주민중항쟁 서른세 돌을 맞이하였습니다. 우리나라의 민주화와 인권과 평화를 위해 수많은 분들이 5월의 제단에 목숨을 바쳤고, 그 분들의 죽음도 이제 5월 정신으로 부활하였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하신 첫 인사 말씀은 “평화”였습니다.
우리 역시 평화를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으로 평화를 원하면 우리 스스로가 평화를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광주교구는 5·18 정신의 영성화 운동을 오랫동안 꾸준히 추진해 왔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는 “평화”입니다. 5·18 광주정신은 평등과 평화입니다. 평화란 개인의 차원에서부터 국제적인 차원의 평화까지 참으로 다양합니다. 특별히 공동체적인 평화는 구성원 상호간의 합의 없이는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 5·18 광주정신은 서로를 존중하고 현실의 고통을 함께 했으며 공권력에 의한 치안 부재의 상황에서도 평화를 유지하였습니다. 이것은 5·18이 보여준 진정한 평화의 가치입니다.
우리는 무고한 희생자들의 숭고한 생명으로 지켜온 평화를 더욱 발전시켜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은 나무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한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평화가 자연생태계와의 관계로 전환되어 질 때 보다 온전한 평화가 이 세상 안에 정착되리라 생각됩니다.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에서 벗어나서 상대를 생각하는 역지사지의 정신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5·18 정신이 단순히 정치적인 민주화 운동이나 시민운동의 수준에 머무른다면 5.18 정신의 참된 뜻을 퇴색시키는 것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5·18 민중항쟁을 기념하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고 그 정신을 계승발전 해 나가면서 우리 자신뿐 아니라 국가와 민족의 평화, 더 나아가서는 세계의 평화를 위한 동력으로 삼고자 합니다.
그러나 이 평화는 우리들만의 평화가 아니라 우리 지역과 우리나라에서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평화이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너희가 이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이렇게 하여 그들은 영원한 벌을 받는 곳으로 가고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곳으로 갈 것이다.”(마태 25) 복음성경에 등장하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의 가르침대로 누군가 어려움을 당했을 때 자기의 입장으로 받아들여 함께 하는 것이 곧 사랑이며 최후 심판의 기준이라는 것입니다.
계엄군이 광주 밖으로 철수하고 난 후 일주일 동안 광주는 스스로 질서를 유지하면서 공동체를 일구었습니다. 당시 광주는 사방이 막혀 고립되어 있었습니다. 언제 열릴 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부상자를 위한 헌혈에 너나 할 것 없이 나섰습니다. 우리는 쌀독을 털어 주먹밥을 만들어 나누어 먹었습니다. 수많은 무기들이 있었지만, 단 한 건의 약탈 사건도 없었습니다. 그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지만 내 피를, 내 밥을 그가 필요로 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렇게 내어놓았습니다. 우리는 진실로 서로에게 사랑을 나누었던 그 순간을 소중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함께 만들었던 대동세상의 그 시간을 기억합니다. 가장 처절한 상황에서 우리는 가장 아름다운 사랑을 경험하였습니다. 그 아름다운 사람의 행동에서 하느님의 구원을 체험 하였습니다.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경험하였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만들었던 사랑과 평화가, 지금 이 순간에도 함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이 사랑과 평화는 우리와는 전혀 다른 처지에서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북녘의 동포들과도 함께 나누어야 하겠습니다. 올해로 정전 60년. 남북으로 갈린 한반도를 두고 참 평화를 이야기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남북 간의 긴장감 완화를 위해 참으로 많은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남북한은 이제 서로에게 핵무기를 겨누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한쪽이 미사일을 만들면 다른 한쪽은 그 미사일을 격추시키는 미사일을 만들고, 한 쪽이 핵무기를 만들면 다른 한 쪽은 그 핵무기를 파괴하는 무기를 만들어 내는 남과 북이 모두 군비증강이라는 악순환을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남과 북의 위정자들이 군사력으로 힘겨루기를 하는 동안 국민은 점점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북한 주민들의 민생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평화의 섬 제주의 해군기지건설은 강정마을 주민들의 삶을 송두리 채 흔들어 놓았습니다. 평화롭게 농사짓고 고기 잡으며 살아가던 사람들이 원치 않는 해군기지 건설 때문에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한 형제로 이웃하여 살던 사람들이 찬성파와 반대파로 나뉘어, 반목하고 갈등하며 살아가는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우리는 남과 북의 위정자들이 쌓아 놓은 저 많은 살상무기들을 내려놓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 무엇을 위해 저 많은 무기들이 필요한지 우리는 모릅니다. 우리는 저 많은 폭탄들이 우리 머리위에 떨어지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평화를 위해 서로에 대한 미움을 먼저 내려놓기를 희망합니다. 미움은 오직 사랑으로만 해소될 수 있음을 우리는 믿고 또 압니다. 우리는 남북의 위정자들이 서로를 마주보고, 한반도에 참 평화를 가져오는 길을 함께 찾기를 희망합니다. 저는 2011년 평양을 방문했을 때에도, 그리고 우리 정부 당국자들에게도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는 첨단 병기는 미사일과 같은 전략 병기가 아니라 남북 간의 화해와 평화 공존이라고 호소한 적이 있었습니다.
민족 화해 위원회를 발족하며 했던 말을 기억합시다.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라도 상대에 대한 사랑과 존중의 원칙을 지키며, 참다운 평화와 일치를 위해서 자신의 삶을 희생 제물로 바치고자 한다. 그침 없는 희생과 기도와 실천적 행동의 통해서, 남북한 민족 구성원 모두에게 진정한 화해와 일치의 정신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우리는 거듭 노력하고자 한다.” 역사의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리는 일은 멸망으로 가는 길입니다.
남북 간에 멈춘 대화를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끊겨진 금강산 길도, 개성공단 문도 다시 열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점점 더 연로해져가는 이산가족들이 서로 자유롭게 소식을 전하고, 만나고, 함께 살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그렇게 한민족인 남과 북이 함께 평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는 참 평화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가장 절박하고 처절한 때에 피를 나누고 밥을 나누었듯이, 지금 남북이 그리고 내가 먼저 시작해야 합니다.
신앙의 해에 “우리 믿음의 영도자이시며 완성자이신”(히브12,2) 예수 그리스도께 우리의 시선을 고정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 마음의 모든 고뇌와 갈망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충족됩니다. 고통과 아픔의 사건에 대한 해답, 죽음의 공허에 대한 생명의 승리, 이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의 신비, 곧 사람이 되시어 우리의 인간적 약점에 함께 하시고 당신 부활의 힘을 통하여 이를 변화시켜주신 그 신비 안에서 충만해 집니다.
33년 전 우리는 짧은 일주일이지만, 서로가 서로를 아껴주고 보듬어 주며 생명을 내어 놓는 구원의 순간을 맛보았습니다. 그 대동 세상을 오늘에 되살리고, 광주를 넘어 전국으로, 휴전선 넘어 북한으로, 그리고 온 세상으로 펼쳐가기 위한 노력을 오늘 다시 다짐하기를 희망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