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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 천주교 광주대교구청 본관

    • 분류 등록문화재 / 기타 / 교육시설
    • 수량/면적 1동 / 건축면적 1,301.76㎡ / 연면적 3,009.07㎡
    • 지정일 2018.09.13
    • 소재지 광주광역시 서구 상무대로 980 (쌍촌동)
    • 시대 1960년대
    • 소유자 재단법인 광주구천주교회유지재단

    천주교 광주대교구청은 1961년 대건신학교의 본관(사무실, 도서관, 교실) 및 헨리관(기숙사), 식당의 용도로 건립된 시설로서 호주 출신 신부(미상)에 의해 설계되었으며 지하층을 통해 유기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특징적이다. 대건신학교는 이후 ‘광주가톨릭대학교’ 및 ‘광주가톨릭대학교 부설 평생교육원’, ‘광주가톨릭평생교육원’을 거쳐 2014년 8월 11일부터 현재까지 ‘천주교광주대교구청’으로 사용 중에 있다.

    대건신학교의 본관 건물로 최초 지하1층 지상2층 규모의 철근콘크리트 구조체에 외벽은 적벽돌을 이용하여 쌓아 올렸고 지하에는 신축당시 시설한 배관과 기계시설 및 배선을 위한 공간이 그대로 남아 있다. 1960, 70년대에 2층 계단실 및 3층 부분을 증축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 천주교 광주대교구청 식당동

    • 분류 등록문화재 / 기타 / 교육시설
    • 수량/면적 1동 / 건축면적 779.27㎡ / 연면적 779.27㎡
    • 지정일 2018.09.13
    • 소재지 광주광역시 서구 상무대로 980 (쌍촌동)
    • 시대 1960년대
    • 소유자 재단법인 광주구천주교회유지재단

    대건신학교의 식당 건물로 철근콘크리트 구조체에 외벽은 적벽돌을 이용하여 쌓아 올렸으며, 지붕 옥상은 헨리관과 마찬가지로 평지붕 외곽 파라페트(parapet) 내부 안쪽에 수로를 형성하고 슬래브 상부에 물을 공급함으로서 여름철 건물의 온도상승을 억제하는 건축기법을 적용하고 있다.

  • 천주교 광주대교구청 헨리관

    • 분류 등록문화재 / 기타 / 교육시설
    • 수량/면적 1동 / 건축면적 540.39㎡ / 연면적 1603.39㎡
    • 지정일 2018.09.13
    • 소재지 광주광역시 서구 상무대로 980 (쌍촌동)
    • 시대 1960년대
    • 소유자 재단법인 광주구천주교회유지재단

    대건신학교 기숙사 건물로 본관 중앙부 뒤쪽에서 직각방향으로 반층의 단차를 두고 계단실에 연결하는 유기적인 형태로 건축되었으며 수직적, 수평적 구성을 강조한 공간을 구성하고 있다. - 지붕 옥상은 평지붕 외곽 파라페트(parapet) 내부 안쪽에 수로를 형성하고 슬래브 상부에 물을 공급함으로써 여름철 건물의 온도상승을 억제하는 하는 건축기법을 적용하고 있다.

  • 천주교 광주대교구청 브레디관

    • 분류 등록문화재 / 기타 / 교육시설
    • 수량/면적 1동 / 건축면적 1,301.76㎡ / 연면적 3,009.07㎡
    • 지정일 2018.09.13
    • 소재지 광주광역시 서구 상무대로 980 (쌍촌동)
    • 시대 1960년대
    • 소유자 재단법인 광주구천주교회유지재단

    1958년, 서울의 카톨릭대학(당시 성신대학)에서 배출하는 졸업생들만으로는 한국에서 필요로 하는 성직자 수를 충족할 수 없다고 판단한 주한 교황대사(Lamgertini)가 지방에 신학교를 설립할 것을 제안하여 1959년에 교황청으로부터 광주에 신학교 설립을 허가 받았다.

    이에 광주교구장 헨리 주교가 미국에서 학교부지 마련과 교사신축을 위한 모금을 하고 1960년에 부지확보, 1961년에 교사신축, 1962년에 신입생 모집, 신학교육을 시작하여 대건신학교의 대교를 보게 되었다.

    1994년에 교명을 광주 가톨릭 대학교로 바꾸었고 1998년 광주 가톨릭 대학교가 남평으로 캠퍼스를 이전하고 이 건물은 천주교 광주대교구청의 시설물로 사용하게 되었다.

    현재, 외벽 창호는 원형이 잘 남아 있어, 방범 샤쉬, 모기장, 오르내리 창의 철물, 멈추는 장치 등이 변형없이 잘 보존되어 있다. 다만 개방형 공동침실에서 개별 침실로 바뀌면서 바닥과 내부 벽에는 일률적인 변형이 진행되어 왔던 것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