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소식
교구[평화신문] 광주대교구 김충호 이영수 신부 사제수품 50돌 금경축 미사
- 작성자 : 관리자
- 등록일 : 2012-06-28
- 조회수 : 1145
"하느님을 만나 정말 행복했습니다."
15일 광주대교구 원로사목자 김충호ㆍ이영수 신부 사제수품 50주년 금경축 미사가 봉헌된 염주 대건ㆍ경환 성당에는 웃음과 눈물이 교차했다.
미사에 참례한 1000여 명은 건강한 모습으로 녹슬지 않은 유머 감각을 보여준 이영수 신부와 함께 웃었고, 바싹 마른 몸으로 휠체어에 의지한 채 제단에 오른 김충호 신부를 보며 슬며시 눈물을 훔쳤다.
이날 금경축 미사는 이영수 신부가 주례하고, 광주대교구장 김희중 대주교, 옥현진 보좌주교를 비롯해 두 신부 동창인 경갑룡(전 대전교구장) 주교와 왕영수(부산교구)ㆍ오경환(인천교구) 신부가 공동집전했다.
이 신부는 미사 후 이어진 축하식에서 "사제서품식 때 주교님 앞에 엎드려 있는데 어찌나 시간이 길던지 살짝 잠이 들었다. 그런데 눈을 떠보니 50년이 지나 있었다"며 세월의 빠름을 재치있게 표현했다. 이어 "부족한 점이 많고 결점 투성이인 제가 그래도 하느님을 만나 정말로 행복했다"면서 "사제가 된 건 큰 행운이었고, 지금 이 자리에서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어 더없이 감사할 따름이다"고 말했다.
이 신부는 "많은 사람에게 큰 은혜를 입었는데, 기도로 보답하겠다"고 거듭 감사인사를 전하며 "주님께 당당히 나아가는 뒷모습이 아름답도록 노력하며 살겠다"고 말해 큰 박수를 받았다.
치매를 앓고 있는 김 신부는 비록 말은 없었지만, 미사에 참례한 사제들과 신자들을 바라보며 희미한 미소로 하고 싶은 말을 대신했다.
1936년 전남 진도에서 태어난 김충호 신부는 1962년 1월 사제품을 받고 군종을 거쳐 나주ㆍ동산동 등 11개 본당 주임을 역임했다. 교구 관리국장을 지냈으며, 2004년 일선 사목에서 물러났다.
이영수 신부는 1938년 전남 목포에서 태어나 1962년 12월 사제품을 받았다. 교구장 비서와 교구 사목국장을 지냈고, 광주가톨릭대 교수로 강단에 서기도 했다. 조곡동ㆍ지산동본당 등 6개 본당 주임을 역임하고 2007년 퇴임했다.
교구장 김희중 대주교는 "두 신부님은 사제로 지천명(知天命, 50살)을 살아오면서 하늘의 뜻을 깨달은 분"이라고 축하했다. 김 대주교는 또 "이영수 신부님은 제가 부탁을 드리면 단 한 번도 거절한 적이 없으시다"고 감사인사를 전하며, 후배 사제들이 훌륭한 선배 사제인 이 신부를 늘 기억하고 찾아뵐 것을 당부했다.
김충호 신부 동창 왕영수 신부는 "두 신부님은 사제 입장이 아닌 신자들 입장에서 신자들이 무엇이 필요한지 고민하고, 신자들과 하나 되려고 노력했다"면서 "신자들에게 깊은 감동과 잊을 수 없는 추억들을 많이 만들어주셨다"고 말했다.
신자들은 이날 두 신부에게 영적 예물로 미사참례 2만 6387회, 십자가의 길 기도 8648회, 성체조배 1만 8735회, 묵주기도 42만 5826단, 화살기도 10만 5809회, 사제들을 위한 기도 6만 8612회, 나눔과 희생 2만 404회를 선물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
▲ 광주대교구장 김희중 대주교(왼쪽 두 번째)가 축하인사를 하고 있다. 제단 앞에는 경갑룡 주교, 이영수 김충호 신부(왼쪽부터)가 앉아 있다. |
15일 광주대교구 원로사목자 김충호ㆍ이영수 신부 사제수품 50주년 금경축 미사가 봉헌된 염주 대건ㆍ경환 성당에는 웃음과 눈물이 교차했다.
미사에 참례한 1000여 명은 건강한 모습으로 녹슬지 않은 유머 감각을 보여준 이영수 신부와 함께 웃었고, 바싹 마른 몸으로 휠체어에 의지한 채 제단에 오른 김충호 신부를 보며 슬며시 눈물을 훔쳤다.
이날 금경축 미사는 이영수 신부가 주례하고, 광주대교구장 김희중 대주교, 옥현진 보좌주교를 비롯해 두 신부 동창인 경갑룡(전 대전교구장) 주교와 왕영수(부산교구)ㆍ오경환(인천교구) 신부가 공동집전했다.
이 신부는 미사 후 이어진 축하식에서 "사제서품식 때 주교님 앞에 엎드려 있는데 어찌나 시간이 길던지 살짝 잠이 들었다. 그런데 눈을 떠보니 50년이 지나 있었다"며 세월의 빠름을 재치있게 표현했다. 이어 "부족한 점이 많고 결점 투성이인 제가 그래도 하느님을 만나 정말로 행복했다"면서 "사제가 된 건 큰 행운이었고, 지금 이 자리에서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어 더없이 감사할 따름이다"고 말했다.
이 신부는 "많은 사람에게 큰 은혜를 입었는데, 기도로 보답하겠다"고 거듭 감사인사를 전하며 "주님께 당당히 나아가는 뒷모습이 아름답도록 노력하며 살겠다"고 말해 큰 박수를 받았다.
치매를 앓고 있는 김 신부는 비록 말은 없었지만, 미사에 참례한 사제들과 신자들을 바라보며 희미한 미소로 하고 싶은 말을 대신했다.
1936년 전남 진도에서 태어난 김충호 신부는 1962년 1월 사제품을 받고 군종을 거쳐 나주ㆍ동산동 등 11개 본당 주임을 역임했다. 교구 관리국장을 지냈으며, 2004년 일선 사목에서 물러났다.
이영수 신부는 1938년 전남 목포에서 태어나 1962년 12월 사제품을 받았다. 교구장 비서와 교구 사목국장을 지냈고, 광주가톨릭대 교수로 강단에 서기도 했다. 조곡동ㆍ지산동본당 등 6개 본당 주임을 역임하고 2007년 퇴임했다.
교구장 김희중 대주교는 "두 신부님은 사제로 지천명(知天命, 50살)을 살아오면서 하늘의 뜻을 깨달은 분"이라고 축하했다. 김 대주교는 또 "이영수 신부님은 제가 부탁을 드리면 단 한 번도 거절한 적이 없으시다"고 감사인사를 전하며, 후배 사제들이 훌륭한 선배 사제인 이 신부를 늘 기억하고 찾아뵐 것을 당부했다.
김충호 신부 동창 왕영수 신부는 "두 신부님은 사제 입장이 아닌 신자들 입장에서 신자들이 무엇이 필요한지 고민하고, 신자들과 하나 되려고 노력했다"면서 "신자들에게 깊은 감동과 잊을 수 없는 추억들을 많이 만들어주셨다"고 말했다.
신자들은 이날 두 신부에게 영적 예물로 미사참례 2만 6387회, 십자가의 길 기도 8648회, 성체조배 1만 8735회, 묵주기도 42만 5826단, 화살기도 10만 5809회, 사제들을 위한 기도 6만 8612회, 나눔과 희생 2만 404회를 선물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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