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광주항쟁 진실 알린 파수꾼 광주인권평화재단(이사장 김희중 대주교)은 5월 23일 전남 나주 광주가톨릭대에서 5ㆍ18 민주화 운동 32주년 기념 학술대회 '5ㆍ18과 천주교'를 개최했다. 광주가톨릭대 신학연구소(소장 김권일 신부)와 공동 주최한 이번 학술대회는 5ㆍ18 민주화 운동에서 진상 규명과 구속자들 석방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한 천주교회 활동을 재조명하는 자리였다. 제1발표자로 나선 서중석(성균관대) 교수는 "광주항쟁 진실 알리기는 천주교회 중심으로 전개됐다고 봐도 좋을 것"이라면서 천주교회 활동을 높이 평가했다. 제2발표자로 나선 은우근(광주대) 교수 역시 "천주교회는 5월 민중항쟁의 목격자와 중재자, 증언자이자 진실의 파수꾼이고자 했다"고 말했다. 전 광주대교구장 최창무 대주교는 기조강연에서 "광주 민주화 운동은 잊어서는 안 되고 잊을 수 없는 일로 기억되고 전승돼야 할 사건"이라면서 "5ㆍ18을 파스카 축제로 새롭게 이해해 사회의 민주화, 인권의 고귀함, 인간 자유의 소중함을 깨닫는 사건으로 기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광주가톨릭대 총장 노성기 신부는 "한국천주교회 역할에 대해 자화자찬하는 자리가 아니라, 치열한 역사의식을 갖고 활동했던 교회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민족의 역사와 아픔에 동참하고 있느냐 하는 것을 진단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학술대회 의의를 설명했다. 다음은 제 1ㆍ2발표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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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 나주 광주가톨릭대에서 열린 518과 천주교 학술대회에서 발표자와 토론자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
▨광주항쟁과 천주교회의 진실 알리기(서중석 성균관대 교수)
천주교회는 광주항쟁과 관련해 대단히 중요한 활동을 했다. 무기 회수 활동, 정부의 과잉 진압에 대한 사과 요구 등에 천주교 사제들이 앞장섰다. 사제들이 이렇게 주도적으로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신념에 의거한 활동으로, 정치적 의도가 없는 순수한 정의 활동이어서다. 천주교회는 미사 강론이나 진상 발표 등으로 광주의 진실을 알렸다. 5월 27일 항쟁이 일단락되고 7월까지 진실 알리기는 천주교회를 중심으로 전개됐다고 봐도 좋다. 천주교회는 공신력이 있었다. 일반 사람은 천주교회에서 말하는 것에 대해서 신뢰할 수 있었다. 당시 언론은 왜곡 보도를 일삼았다. 한국 현대사에서 광주항쟁처럼 일반 사람들이 사실을 다르게 알고 있는 경우도 드물 것이다. 천주교회는 진실 알리기뿐 아니라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당시 광주대교구장 윤공희 대주교는 최규하 대통령에게 광주 시민의 마음 속 깊은 상처를 어루만져 주기를 요청하는 편지를 보냈고, 김수환 추기경은 시민 위로차 광주대교구청을 방문했다. 광주대교구 사제단은 '광주사태에 대한 진상'을 발표하는 한편 여러 본당에서 광주항쟁 진상규명을 위한 시국기도회를 가졌다. 또한 1981년 5ㆍ18 1주기를 맞아 진상 규명과 함께 구속자 석방 운동을 벌였다. 그러나 조철현 몬시뇰(광주대교구 원로사목자)이 대부분의 교구와 교회 언론이 침묵으로 독재 권력에 동조한 것이 가슴 아팠다고 회고한 대로, 한국천주교회 전체가 광주 고통에 동참한 것은 아니었다. 전주교구는 처음부터 적극적이었지만 김 추기경과 일부 사제가 애쓴 것을 제외한다면 대부분 교구와 사제들이 침묵을 지켰고, 주교회의도 소극적이었다. 광주항쟁과 천주교회 활동에 자료집이나 증언은 적다고 할 수 없다. 그렇지만 김영택의 '10일간의 취재수첩' '5월 18일 광주'와 윤선자의 연구논문 '5ㆍ18 광주 민주화 운동과 종교계의 역할' 등을 제외하면 천주교회 활동을 전반적으로 다룬 글이 드물다. 천주교 역할을 생각해볼 때 지금까지 연구가 방치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부끄러움 또는 질문하는 역사의식- 5월 민중항쟁과 광주ㆍ전남 가톨릭교회(은우근 광주대 교수)
광주ㆍ전남 가톨릭교회(이하 교회)는 종교와 사회를 막론하고 5월 민중항쟁에 가장 깊게 연루된 민간 기구다. 교회는 1980년대 격변기에 5ㆍ18 수습대책위원회, 진상 규명, 구속자 석방, 5ㆍ18 정신계승 등 5월 민중항쟁과 관련한 다양한 활동에 참여했다. 죽음의 공포가 지배한 묵시록의 시기에 교회는 5월 민중항쟁의 목격자와 중재자, 그리고 증언자이자 진실의 파수꾼이고자 했다. 목격자와 중재자로서 활동은 주로 항쟁 기간에 이뤄졌고, 증언자이자 파수꾼으로서 활동은 진상 규명 및 구속자 구명 활동과 관련된 것이다. 5월 민중과 사제들은 국가 폭력의 잔인성을 날것으로 목격하며 역사를 정면으로 마주했다. 그리고 '지금 어떻게 행할 것인가?'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고 때론 생명을 바쳐 응답했다. 민중항쟁의 진상을 알리기 위해 광주를 '탈출'한 김성용 신부(광주대교구 원로사목자) 역시 질문을 안고 있었다. '이 순간, 이 장소를 뜨면 도망하는 것이 아닌가. 시민이 어떻게 생각할까. 비겁한 신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무력한 교회라고 비판 받을지도 모른다'하고. 그는 서울에서 김수환 추기경을 비롯한 여러 사제를 만나, 5월 민중항쟁의 진상을 전하며 항상 같은 질문을 간직했다. 이 밖에도 투옥되거나 연행되지 않은 많은 다른 사제들도 이 질문을 항상 담고 있었다. 사제들에게 역사 앞의 부끄러움과 신 앞의 부끄러움은 분리되지 않았다. 5월 민중은 목숨을 건 투쟁을 통해 공포를 극복하고 하나됨의 신비와 환희를 체험했지만, 죽음의 두려움을 완전히 극복하진 못했다. 5월 민중이 느낀 부끄러움은 공포로 인해 공동체 유대가 단절된 스스로를 발견함으로써 생기는 자의식이다. 부끄러움을 느낄 때 우리는 적어도 겸손해질 수 있다. 부끄러움을 느끼는 인간은 신과 역사 앞에서 뻔뻔해지지 않는다. 부끄러움을 메꾸고자, 반성하고 발전하려 노력하기 때문이다. 5월 민중항쟁 이후 30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다. 5ㆍ18에 대한 추상적 인식을 극복하고, 궁극적으로 5월 민중항쟁의 현재적 의미를 새롭게 발견해야 한다. '왜 아직도 5ㆍ18인가?', '왜 5ㆍ18로 돌아가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답해야 한다.
정리=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