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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소식

교구[광남일보] 한국인 첫 사제 '김대건 신부' 무용으로 재탄생

  • 작성자 :  홍보
  • 등록일 :  2009-09-11
  • 조회수 :  669
 
 
20일 오후 5시·7시30분 광주문화예술회관 대극장
 

김대건 신부가 무용으로 재탄생된다. 지역의 한 무용단이 한국인 첫 사제 김대건 신부의 일대기를 한국무용으로 작품화해 무대에 올릴 예정이어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김미숙한국무용단(단장 김미숙 조선대 무용과 교수)이 뿌리깊은 나무 연작시리즈 세번째로 마련한 '한국인 첫 사제 성 김대건'(안드레아)이 그것으로 오는 20일 오후 5시와 7시30분 광주문화예술회관 대극장 무대에 올린다.
이번 공연은 '신앙의 빛과 어둠의 박해'를 비롯해 '부르심…첫 사제의 탄생', '이 땅의 빛을 위한 순교' 등 3막과 '죽음을 부르는 망나니 춤', '이 땅의 빛' 등으로 구성돼 선보인다. 특히 김대건 신부는 1846년 9월16일 26세에 순교, 짧은 삶 속에 담겨져 있는 함의들을 투영하면서도 163주년이 되는 현시점에서 김 신부의 삶은 물론이고 정신을 무용으로 형상화해 무대에 올리는 것이어서 의미가 크다.
뿌리깊은 나무 첫 공연은 지난 2001년 일본으로 끌간 심수관을 시작으로 남종화의 마지막 거목 허백련 등 이 시대 최고의 명인이나 지역을 대표하는 명인들을 작품화해 무대에 올려 호응을 얻어 왔다.
김미숙 단장은 "신앙을 떠나 옛 선인의 삶은 현대적인 의상과 조명 무대기법으로 재구성하여 기존의 한국무용공연의 틀을 완전히 벗어난 작품으로 한편의 잘 짜여진 뮤지컬 못지않는 작품으로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다"고 밝혔다.
최기원 대본, 김미숙 안무·연출로 30여명의 단원이 출연한다.
입장료는 3만원, 1만5000원, 1만원.
문의 : 062) 230-7425
 
김대건 신부(金大建, 1821-1846)

한국 천주교 최초의 신부이자 순교자이다. 금가항 신학교에서 탁덕(鐸德)으로 승품(陞品), 한국사람으로서는 최초로 신부가 되어 미사를 집전하였다. 충남 강경에 잠입하여 각지를 순방하면서 비밀리에 신도들을 격려하고 전도하였다.
성인. 본관 김해. 세례명 안드레아. 아명(兒名) 재복(再福)·보명(譜名)·지식(芝植). 충청남도 당진군 우강면(牛江面)에서 태어났다. 증조부 진후(震厚)가 10년 동안의 옥고 끝에 1814년 순교하고, 아버지 제준(濟俊)도 1839년의 기해박해(己亥迫害) 때 순교하는 등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났다. 7세 때 경기도 용인군 내사면(內四面)으로 이사함에 따라 그곳에서 성장하였다. 1836년(헌종 2) 프랑스 신부 모방(P.Maubant)에게서 세례를 받고 예비신학생으로 선발되어 상경하였다.
역관(譯官) 유진길(劉進吉)에게 중국어를 배운 후, 모방의 소개장을 가지고 중국으로 건너갔다. 조선 전교(傳敎)의 책임을 진 마카오의 파리외방전교회(外邦傳敎會) 칼레리 신부로부터 신학을 비롯한 여러 가지 새로운 서양 학문과 프랑스어·중국어·라틴어를 배웠다. 1842년 수업을 끝낸 다음 기해박해 이후 천주교도에 대한 탄압이 계속되고 있는 고국에 밀입국을 시도하였다.
처음 의주를 거쳐 서울로 향하다가 감시가 심하여 되돌아갔고, 얼마 후 페레올 주교로부터 고국에 잠입하라는 명령을 받고, 이번에는 두만강변 경원을 거쳐 입국하려다가 또 실패하고, 바쯔자[八家子]로 돌아가 매스트르 신부 문하에서 신학을 연구하였다. 1845년(헌종 11) 단신으로 국경을 넘어 서울 잠입에 성공, 천주교 대탄압 이후 위축된 교세확장에 전력을 기울이다가 다시 프랑스 외방전교회에 지원을 요청하기 위하여 쪽배를 타고 상하이[上海]로 건너갔다.
금가항(金家港) 신학교에서 탁덕(鐸德)으로 승품(陞品), 한국사람으로서는 최초로 신부가 되어 미사를 집전(執典)하였다. 8월 페레올 주교, 다블뤼 주교와 함께 상하이를 떠나 충청남도 강경에 잠입하여, 서울을 향하여 각지를 순방하면서 비밀리에 신도들을 격려하고 전도하였다. 1846년 선교사의 입국과 선교부와의 연락을 위한 비밀항로 개설을 위하여 백령도 부근을 답사하다가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었다.
전후 6회에 걸친 혹독한 고문 끝에 선교부와 신부들에게 보내는 편지 및 교우들에게 보내는 유서를 쓴 후 26세로 순교, 경기 안성군 양성면(陽城面) 미산리(美山里)에 안장되었다. 1857년(철종 8) 교황청에 의하여 가경자(可敬者)로 선포되고, 1925년 교황청에서 시복(諡福)되어 복자위(福者位)에 오르고 1984년 4월 내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다시 시성(諡聖)되어 성인위(聖人位)에 올랐다.
 
© 광남일보 2009-09-10 고선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