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소식
교구[광주평화방송] 윤공희 대주교와 DJ의 각별한 인연 '눈길'
- 작성자 : 홍보
- 등록일 : 2009-08-19
- 조회수 : 588
오늘 서거한 김대중 전 대통령과 천주교광주대교구장을 지낸 윤공희대주교와의 각별했던 인연이 세삼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윤 대주교는 80년 5.18 광주 민중항쟁 당시 군사 정권으로부터 사형 선고를 받은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롯한 5·18관련자들의 사면·복권을 위해 당시 전두환 대통령을 만나 두 차례나 간곡히 요청했습니다.
특히 1987년 6·10민주화운동 당시에는 함세웅,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호헌 철폐 국민운동본부 고문을 맡아 우리나라 민주화를 함께 이끌었습니다.
한국 천주교의 어른이자 김 전 대통령과 민주화 운동을 함께 해 온 윤 대주교는 김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접한 뒤, 김 전 대통령이야말로 가톨릭 신앙을 바탕으로 꿋꿋하게 신념을 지켜온 올바른 정치인이라고 평가하며 깊은 슬픔에 잠겼습니다.
한편 천주교 광주대교구는 한국 민주화를 위해 평생을 살다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숭고한 뜻을 기리며 조만간 추모미사를 봉헌할 예정이며, 오늘 세브란스 병원에 광주대교구 신자들의 애도의 마음을 담아 조화를 보냈습니다.
윤공희대주교가 광주평화방송과
가진 단독 인터뷰 전문
윤공희 전 천주교 광주대교구장,
"DJ는 꿋꿋한 신념을 지닌 훌륭한 신앙인"
-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한국의 민주화와 남북통일, 인권 운동에 앞장섰던 김 전 대통령이 서거 소식을 접하고 진심으로 애도의 마음을 금할 수 없다.
- 처음 정치인 김대중을 알게된 동기는?
처음 김대중 전 대통령을 뵌 것은 박정희 정권시절인 64년 4월쯤 이효상 국회의장(제6,7대 국회의장)공관에서 천주교 주교들하고 가톨릭 신자인 국회의원들하고 만나는 자리에서 처음 김대중 선생을 뵈옵고, 그때 서로 상견례하는 자리였는데 우리가 만난 그날이 정확히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김대중 의원이 국회에서 의사일정을 끌어야할 필요성이 있었던 모양인데 의원 발언을 통해 무려 5시간 이상을 끄는 연설을 하셨다고 들었는데, 그 연설 내용이 억지로 시간을 끄는 것이 아니고 말씀 하나 하나가 내용이 훌륭한 내용이었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당시 참석자들이 웅변가라고 김 전 대통령을 칭찬했다. 그때 처음 만났고 처음 알게 됐다.
- 그때 김대중에 대한 느낌은?
내가 보고 느낀 것보다 옆에 있던 사람들이 칭찬을 해 주는 말로 참 좋은 인상을 받았다. 활력이 넘치는 좋은 정치인인가보다 생각했고, 더욱이 신자로서 소개를 받았으니까 가톨릭 신앙인으로서 유능하고 젊은 정치인이 나오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고 참 희망적인 일이라고 생각했다.
- 80년 김 전 대통령이 군사정권으로부터 내란음모죄로 사형 선고를 받았을 당시 광주대교구장으로서 어떤 역할을 하셨나?
교황청이 구명운동을 직접 했다는 사실은 요즘에 와서 알려진 것으로, 당시에는 외교적인 활동을 전혀 공개를 하지 않아서 전혀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80년 당시 미사 강론을 통해 사제를 포함한 모든 5·18관련자들에 대해 사면해 줄 것을 수차례 당국에 호소했던 기억이 난다.
김 전 대통령은 훌륭한 신앙인이고,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한 정치인으로서 많은 박해를 받으면서도 꿋꿋하게 신념을 굽히지 않고 잘 지켜왔고 무엇보다도 훌륭한 신앙인으로 자신은 기억하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이 어려움을 겪을 당시 광주대교구 신자들의 마음이 어떤 구체적인 것으로 표시돼서 전달됐는지는 모르지만 나중에 정치활동을 다시 할 때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에서 한번 초청해서 식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자신의 고생담, 한국의 민주화를 위한 신념, 포부 등을 경청했다.
특히 일본에서 납치사건이후 죽을 고비를 넘겼는데 그런 어려움 중에도 신앙으로 영적인 힘을 받았다는 말씀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런 믿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고 있을 때 잘 극복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김 전 대통령은 훌륭한 신앙인이고,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한 정치인으로서 많은 박해를 받으면서도 꿋꿋하게 신념을 굽히지 않고 잘 지켜왔고 무엇보다도 훌륭한 신앙인으로 자신은 기억하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이 어려움을 겪을 당시 광주대교구 신자들의 마음이 어떤 구체적인 것으로 표시돼서 전달됐는지는 모르지만 나중에 정치활동을 다시 할 때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에서 한번 초청해서 식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자신의 고생담, 한국의 민주화를 위한 신념, 포부 등을 경청했다.
특히 일본에서 납치사건이후 죽을 고비를 넘겼는데 그런 어려움 중에도 신앙으로 영적인 힘을 받았다는 말씀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런 믿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고 있을 때 잘 극복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 80년 당시 故 김수환 추기경과 윤 대주교가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을 만나 사면을 위한 말씀이 있었는지?
전두환씨가 워낙 이야기를 많이 하는 스타일이어서 우리는 듣는 입장이었다.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5·18과 관련자들에 대한 석방과 사면을 요청하는 등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던 것으로 안다.
- 1987년 6월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 발족당시 함석헌 옹과 문익환, 김대중, 김영삼 전 대통령과 함께 대주교께서는 고문으로 활동한 적이 있는데 그때 기억을 말씀해주십시오?
아마 내가 한국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 담당 주교로 있었을 당시 상황 같은데 당시 정평위가 여러 가지 활동을 하고 있어서 그런 상황에서 나를 고문으로 추대한 것 같다.
당시 김대중, 김영삼 전 대통령과 함께 고문직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고 흔쾌히 수락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 김대중, 김영삼 전 대통령과 함께 고문직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고 흔쾌히 수락했던 기억이 난다.
- DJ와의 개인적인 만남과 일화?
개인적인 만남은 없었지만 정치활동을 재개한 뒤 그때 정평위에서 초청해 식사를 하면서 상당히 긴 시간동안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던 기억이 난다. 무엇보다 참석자들이 김 선생의 이야기를 듣는 입장이었다. 정치 활동을 하면서 광주를 방문하면 교구청을 직접 찾아와 면담을 했던 경우는 여러 번 있었다.
- 대통령 취임 이후 어떤 만남은 있었는지?
대통령이 된 다음에는 오히려 만나는 것이 더 조심스러웠다. 일부에서 천주교 신자 대통령이 됐다고 자꾸 만나면 사람들이 보기에 이상하게 볼 수 있어서 대통령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오히려 덜 만났던 것 같다. 오히려 야당시절 박해받던 시절에는 마음 편하게 만났다. 우리나라에 참으로 훌륭한 정치인들이 있었지요. 그런데 김대통령은 누구보다도 더 박해를 받은 정치인이다 감옥을 몇 차례나 다녀오고, 일본에서 납치되고, 5.18 때문에 내란죄목으로 사형까지 언도 받고 참으로 많은 박해를 받았다. 그런데 군사정권, 독재정권이 이후로 김대중씨가 공산주의자인 것처럼 몰고 가는 것을 굉장히 많이 이야기를 했다. 신자인 고위 공무원이 김대중 선생이 빨갱이라는 말을 하는 것을 듣고 굉장히 놀랬다. 얼마라 세뇌가 되었으면 이런 말이 나오는가 참 많은 박해를 받은 분이지만 자신의 정치적인 신념을 꿋꿋하게 지켜나가신 분이구나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참으로 훌륭한 지도자를 가졌구나하는 생각을 해봤다.
- 인간 DJ를 평가한다면?
제일 우리가 믿는 바탕이 같은 신앙인으로서 정치하고 이런 것도 신자로서 믿음에서 오는 신념을 가지고 살아왔다. 이런 것을 바탕으로 믿고 기대하는 마음이 있었다. 박해를 참 많이 받으면서도 꿋꿋하게 자신의 신념을 지키신분이다. 마음으로 여러 가지 잘해주길 바라는 마음이야 어떤 모양으로든 통할 수 있었겠죠.
© 광주평화방송 2009-08-18 김선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