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소식
CBCK[새책] 미셸 드 생피에르의 ‘아르스의 성자 성 비안네 신부’
- 작성자 : 홍보
- 등록일 : 2009-08-06
- 조회수 : 524
성 비안네 신부 삶 새롭게 조명
'사제의 해'를 맞아 본당 사제들의 수호성인인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1786~1859) 신부의 삶을 새롭게 조명한 단행본이 발간됐다.
프랑스 언론인 출신 소설가 미셸 드 생피에르(1916~1987)의 「아르스의 성자 성 비안네 신부」로, 그리스도를 닮은 착한 목자로서 살아간 비안네 신부가 실천한 하느님 사랑의 증거를 낱낱이 보여준다.
신학교 교수신부들이 몇 차례나 퇴교를 종용했을 만큼 학습능력이 떨어지는 신학생 비안네가 어떻게 어려움을 극복하고 사제품을 받기에 이르렀는지, 230여 명밖에 되지 않는 작은 마을 아르스 본당에서 어떻게 훌륭한 주임사제로 살아갔는지, 설교자와 고해 신부로서 프랑스에서 어떻게 가장 유명한 사제로 명성을 얻게 됐는지 하나하나 짚어간다.
둔재에서 뛰어난 영성 지도자로 자리매김하기까지 그의 인내와 겸손, 사랑과 영성을 따라가다 보면, '성인은 특별한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조금 부족한 듯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가능하다'는 진실을 새삼 일깨운다.
평범함 속에서 뚜렷한 목표를 좇은 성인은 동료 신학생들의 우롱과 야유, 신학교 입학 1년 만에 이뤄진 퇴학조치에도 포기하지 않고 기도를 통해 사제품을 받게 된다. 1818년 시골 본당 신부로 부임한 그는 프랑스 대혁명으로 온 나라가 피로 얼룩진 가운데 42년간 하느님 사랑을 일궈내고 아르스는 물론 프랑스 전역에 영적 빛을 비춘다.
'사제의 해'를 맞아 본당 사제들의 수호성인인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1786~1859) 신부의 삶을 새롭게 조명한 단행본이 발간됐다.
프랑스 언론인 출신 소설가 미셸 드 생피에르(1916~1987)의 「아르스의 성자 성 비안네 신부」로, 그리스도를 닮은 착한 목자로서 살아간 비안네 신부가 실천한 하느님 사랑의 증거를 낱낱이 보여준다.
신학교 교수신부들이 몇 차례나 퇴교를 종용했을 만큼 학습능력이 떨어지는 신학생 비안네가 어떻게 어려움을 극복하고 사제품을 받기에 이르렀는지, 230여 명밖에 되지 않는 작은 마을 아르스 본당에서 어떻게 훌륭한 주임사제로 살아갔는지, 설교자와 고해 신부로서 프랑스에서 어떻게 가장 유명한 사제로 명성을 얻게 됐는지 하나하나 짚어간다.
둔재에서 뛰어난 영성 지도자로 자리매김하기까지 그의 인내와 겸손, 사랑과 영성을 따라가다 보면, '성인은 특별한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조금 부족한 듯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가능하다'는 진실을 새삼 일깨운다.
평범함 속에서 뚜렷한 목표를 좇은 성인은 동료 신학생들의 우롱과 야유, 신학교 입학 1년 만에 이뤄진 퇴학조치에도 포기하지 않고 기도를 통해 사제품을 받게 된다. 1818년 시골 본당 신부로 부임한 그는 프랑스 대혁명으로 온 나라가 피로 얼룩진 가운데 42년간 하느님 사랑을 일궈내고 아르스는 물론 프랑스 전역에 영적 빛을 비춘다.
자신은 고행과 단식, 청빈을 통해 한 삶을 살았지만, 신자들에겐 하느님께서 준 사랑의 잣대를 제시하며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어냈다. 몸에 밴 친절과 자애심, 몸을 돌보지 않는 봉사의 삶은 공동체와 지역 주민들에게 감동을 이끌어내기에 충분했다. 갖가지 미사여구를 써서 어렵게 강론하는 당시 사제들과 달리 간단명료하고 직설적이면서도 사람들의 마음에 더 강렬한 여운을 남기는 강론으로도 유명했다.
▲ 성 비안네 신부가 산 사제관 정원
고행을 고행이라 여기지 않고 70살이 넘기까지 하루에 18시간씩이나 고해성사를 주며 신자들을 돌보던 비안네 신부는 1859년 8월 4일 73살을 일기로 고해성사를 보기 위해 몰려드는 사람들을 뒤로 하고 하늘의 별이 됐다. 그리고 그는 곧 본당 주임신부로는 처음으로 1925년 5월 31일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시성됐으며, 1929년엔 '본당 신부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됐다.
가톨릭출판사 / 9000원
© 평화신문 2009-07-05 오세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