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소식
교구"신유박해 때 영광지역서 2명 순교"
- 작성자 : 홍보
- 등록일 : 2009-04-02
- 조회수 : 589
광주대교구 교회사연구소-광주가대 신학연구소,
‘… 영광순교자 고찰’ 학술회의
‘… 영광순교자 고찰’ 학술회의
1801년 신유박해 당시 전남 영광지역에서 천주교 신자 2명이 순교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아울러 이런 역사적인 고증을 바탕으로 영광지역에 순교 성지를 조성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이 같은 제언은 광주대교구 교회사연구소와 광주가톨릭대학교 신학연구소가 3월 27일 전남 영광군 한전문화회관에서 개최한 ‘1801년 신유박해 영광순교자 고찰 학술회의’에서 나왔다.
서종태 박사(호남교회사연구소 연구실장)는 ‘조선시대 천주교 전래와 신유박해 영광 순교자 고찰’이란 주제 발표에서 “여러 가지 역사적인 자료를 검토해 볼 때 영광 지역에는 1791년 신해박해 이전부터 복음이 전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며 “기록으로 전해지는 신유박해 당시 영광지역의 신자는 전주와 고산에 이어 호남지역에서 세 번째로 많은 7명이 있었을 정도로 천주교가 다른 지역에 비해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고 밝혔다.
서 박사는 이어 “천주교 박해를 통해 목숨을 잃은 영광지역 신자들은 이화백·오씨·이우집·김치명·유문보 등 모두 5명이었다”며 “이들 가운데 이화백과 오씨는 신유박해 때 영광에서 순교했고, 김치명과 유문보는 병인박해 때 공주와 나주에서 각각 순교했으며, 이우집은 배교 후 신유박해 때 전주에서 처형당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지정 토론에 나선 한건 신부(부산교구 교회사연구소 소장)는 “순교 터를 추정하는 데는 매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며, 한 번 잘못 선정하면 그것이 고착화 돼 후대에 큰 오류를 가져올 수 있다”며 “영광읍성의 전체를 도면화하고 당시 죄수를 가두던 ‘장방청’이나 ‘군사 훈련장’부터 파악하는 등 먼저 순교자들이 잡혀 있던 감옥터를 찾아야 할 것”이라고 제안해 눈길을 끌었다.
문병구 신부(광주 영광본당 주임)는 ‘성역화 사업의 현황과 과제’라는 발표에서 “광주대교구에서 가장 먼저 순교자를 배출한 영광지역을 순교 성지로 개발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순교자들에 대한 더 많은 연구와 고증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며 성지 조성을 위한 예산 확보를 시급한 과제로 꼽았다.
성역화 사업을 위한 다양한 의견은 주제발표에 이은 토론에서도 거듭 강조됐다. 지정 토론자로 나선 송홍철 신부(광주 월곡동본당 주임)는 “순교자 현양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선구자들의 노력과 순교자들을 현양하기 위한 기도운동이 중요하다”며 “영광 순교자들에 대한 약전을 만들고, 영광 순교자들을 위한 기도운동과 현양대회 등을 개최하길 바란다”고 제안했고, 옥현진 신부(광주대교구 교회사연구소 소장)는 기조발표에서 “지역 내에 있는 순교 사적지를 연결하는 종합적인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피정센터를 개소하는 등 순교영성의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가톨릭신문 2009-04-05 곽승한 기자 Paulo@catholictime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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