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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CK홍용호 주교와 동료 80위 예비심사 경과와 남은 과정
- 작성자 : 관리자
- 등록일 : 2022-06-22
- 조회수 : 116
근현대 신앙의 증인 ‘하느님의 종 홍용호 프란치스코 보르지아 주교와 동료 80위’(이하 홍용호 주교와 동료 80위) 시복 안건 예비심사가 6월 7일 오후 3시 서울 중곡동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대강당에서 열린 종료회기로 일단락됐다. 이제 한국교회는 예비심사의 모든 소송 기록 문서(조서) 사본과 영어 번역본을 교황청 시성부에 제출해 심사를 받을 예정이다.
홍용호 주교와 동료 80위 시복 안건 예비심사 종료는 한국교회 순교 역사의 두 줄기인 조선왕조 치하 천주교 박해시기 순교자들과 6·25전쟁 전후 순교자들에 대한 국내 시복 절차가 큰 틀에서 완료됐다는 것을 뜻한다.
홍용호 주교와 동료 80위가 누구인지와 국내 예비심사 진행 경과, 교황청 심사 과정을 알아본다.
■ 근현대사의 질곡 속 순교자들
홍용호 주교와 동료 80위는 한국 근현대사의 질곡 속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을 삶과 죽음으로 증언한 순교자들이다. 홍용호 주교와 동료 80위 시복 추진에는 여전히 분단된 현실을 사는 신앙인으로서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노력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담겨 있다.
홍용호 주교와 동료 80위 대부분은 6·25전쟁 전후 ‘그리스도교 신앙에 대한 증오’ 때문에 공산주의자들의 조직적인 박해로 죽임을 당한 순교자들이다. 1901년 제주도 신축교난으로 순교한 신재순(아우구스티노), 1951년 중국 공산당에 체포돼 15년의 옥고를 치른 뒤 흑룡강성 강제수용소에서 복역하다 1974년 병사한 김선영(요셉) 신부, 6·25전쟁 중 공산주의자라는 누명을 쓰고 개신교 신자들에 의해 1950년 죽임을 당한 송해붕(요한 세례자)도 근현대 신앙의 증인으로 시복이 추진되고 있다. 이들 3위는 순교 배경이 서로 다르고, 북한군과는 무관하지만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이유로 희생된 순교자들이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근현대 신앙의 증인 대부분이 북한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순교했다. 이런 특성으로 북한 지역에서 피랍돼 옥사하거나 피살된 하느님의 종은 홍용호 주교를 비롯해 35위에 이른다. 6·25전쟁 중 서울, 대전 등 남한 지역에서 체포돼 북으로 끌려가 중강진까지 이어진 ‘죽음의 행진’으로 순교한 하느님의 종은 패트릭 번 주교를 포함해 11위다.
81위 가운데 피랍돼 행방불명된 뒤 순교한 하느님의 종도 27위나 된다. 평양을 포함한 북한 지역에서 행방불명된 상태로 순교한 하느님의 종은 홍용호 주교 등 19위, 서울에서 피랍돼 행방불명된 하느님의 종은 이재현(요셉) 신부 등 8위가 있다.
시복 추진을 하는 교구별로 보면 서울대교구가 27위로 가장 많고, 평양교구 24위, 대전교구 15위, 춘천교구 7위, 광주대교구 5위, 수원·인천·제주교구 각 1위씩이다.
■ 근현대 신앙의 증인 시복 추진 경과와 의의
홍용호 주교와 동료 80위는 한국교회 역사에서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시대에 순교한 인물들이다.
2007년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이하 시복시성특위)는 그동안 교구별로 조사, 수집돼 온 ‘한국교회의 근현대 수난사와 순교자들에 관한 자료’에 대한 조사작업을 주교회의 차원에서 통합 정리할 필요성을 인식하고, 주교회의 2007년 춘계 정기총회에서 정식 제안했다.
이때는 6·25전쟁이 끝난 지 50여 년이 지난 시점이다. 조사작업이 더 빨리 시작됐다면 증인이나 증거 확보가 보다 원활하게 진행됐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근현대 신앙의 증인이 남북 분단과 동족상잔의 비극 속 순교자라는 사실은 시복 추진을 하는 데에도 영향을 미쳤다. 6·25전쟁으로 남북 분단이 고착화된 상황에서 6·25전쟁 전후 순교자들에 대한 시복 추진이 남북관계에 민감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고려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이같이 남북 간 특수상황까지 얽혀 있는 ‘한국천주교회의 근현대 신앙의 증인에 대한 시복 조사’를 주교회의 2009년 추계 정기총회에서 시복시성특위가 맡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2010년 춘계 정기총회에서는 근현대 신앙의 증인 시복 통합 추진을 승인했다.
예비심사 법정은 2017년 2월 22일 개정한 이래 지난 5월 13일까지 총 25회기가 열렸다.
근현대 신앙의 증인들에 대한 시복은 정치적인 현실과 상충하는 부분이 있음에도 한번은 거쳐야 하는 과정이었고 마침내 국내 절차를 마쳤다는 데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홍용호 주교와 동료 80위 시복 안건 예비심사 재판관 대리 박선용(요셉) 신부는 “한국 근현대사 안에서 수많은 순교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명확히 확인했다”며 “더 나아가 순교자들의 놀라운 신앙의 용기와 교회에 대한 사랑을 알게 된 것이 중요하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이번 시복 안건에 포함되지 않은 인물들에 대한 새로운 시복 추진과 관련해서는 “각 교구별로 자체적으로 추진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 향후 교황청 심사 과정
홍용호 주교와 동료 80위 시복 안건 예비심사 종료회기에서 문서전달자로 임명된 재판관 대리 박선용 신부가 모든 소송 기록의 사본과 영어 번역본을 교황청 시성부에 제출하면 교황청 심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교황청 심사 단계에서는 홍용호 주교와 동료 80위 시복 안건 로마 현지 청원인 역할을 맡는 정연정 신부(티모테오·로마한인신학원 원장)가 시성부 요구 사항에 응대한다. 시성부는 보고관(Relatore)을 임명해 시성부 재판부에 제출하는 2심 조서인 심문요항(Positio)을 준비하도록 지시하고, 심문요항을 갖고 시성부 역사위원회-신학위원회-추기경과 주교위원회 심사와 교황에 대한 보고가 이어진다.
시복까지는 정확한 기간을 예측하기 어렵지만 통상 7~10년이 걸린다. 시성부 보고관이 한국역사에 대해 익숙하고 영어에 능통하다면 시복까지 걸리는 기간이 단축될 수 있다.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123위는 교황청 심사 기간이 5년 걸렸는데 매우 짧은 기간인 것으로 평가된다.
홍용호 주교와 동료 80위 가운데 순교 일시와 장소가 명확하지 않은 순교자 27위가 있어 시복 결정에 지연 요소가 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예비심사 검찰관 이정주(아우구스티노) 신부는 “행방불명된 순교자의 순교에 물리적 확실성이 없더라도 ‘윤리적 확실성’이 있다”며 “앞뒤 사건을 연결하다 보면 정황증거들에 의해 당연히 확인되는 사실이 있을 때 윤리적 확실성이 인정되므로 시복에 지연 요소는 안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순교자는 기적심사 없이 복자로 선포되지만 시성을 위해서는 국내 재판과 시성부 재판에서 기적 심사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