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소식
교구5.18진실 알린 광주대교구 정형달 신부 16일 선종(善終)...첫 위령미사 봉헌
- 작성자 : 관리자
- 등록일 : 2021-01-17
- 조회수 : 670
(광주가톨릭평화방송) 김선균 기자 = 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전후로 광주의 참상을 알리기 위해 적극 앞장섰던 천주교광주대교구 정형달 바오로 신부가 지병으로 오늘(16일)선종했습니다.
향년 78세입니다.
천주교광주대교구청 성당에 마련된 정 신부의 분향소에서는 오늘(16일)밤 8시 교구장인 김희중 대주교와 옥현진 총대리주교, 교구청 사제, 유가족 등이 참례한 가운데 첫 위령미사를 봉헌했습니다.
이날 위령미사는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철저히 준수한 가운데 필수 인원만 참례했습니다.
옥 주교는 강론에서 “자신이 초등학생 시절 본당 복사로 활동할 당시 본당에 부임하셨던 신부님과의 첫 만남이 기억난다"고 회고한 뒤, “신부님의 첫 인상은 안경 너머로 날카로운 눈매를 보였지만 강론을 들으면서 신부님처럼 훌륭한 사람이 돼야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습니다.
옥 주교는 이어, “신부님께서 '착한 사마리아인'과 관련된 강론을 하시면서 우리가 고통당한 사람, 어려운 사람을 외면하면 우리의 마음은 ‘사막’과도 같다고 하셨는데 지금도 어릴적 당시 들었던 신부님의 말씀이 생생하다”며 “자신의 성소의 시작은 바로 신부님과 만남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신부님께서는 평생 남에게 폐 끼치는 것을 싫어하셨고, 후배 사제들에게 모범이 되셨으며, 정의가 무엇인지를 온 몸으로 보여주셨다”고 기억했습니다.
끝으로 옥 주교는 “생전 신부님의 강론 말씀처럼 우리 마음이 사막과 같지 않도록 그런 사제로, 또 그런 일꾼으로 살아가겠다고 다짐한다”며 “여러분도 주변에 어려운 사람, 힘든 사람을 위하는 삶을 살아가면 좋겠다”고 당부했습니다.
한편 故 정형달 신부는 1943년 9월 전남 나주에서 태어나 1969년 12월 16일 사제품을 받았습니다.
이후 장성본당과 남동본당 보좌신부를 거쳐 해남본당과 서교동본당, 신동본당, 농성동본당 주임신부를 지냈습니다.
또, 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해 용당동본당, 임곡본당, 옥암동본당 주임신부를 지낸 뒤 운암동본당 주임신부를 끝으로 2011년 7월 27일 퇴임식을 갖고 42년간의 사목활동을 마감했습니다.
故 정형달 신부는 계엄군 학살의 공포가 채 가시기 전인 1980년 6월 광주대교구 사제단이 광주항쟁 이후 최초로 발표한 ‘광주사태의 진상’이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직접 작성한 주인공으로 ‘광주의 진실’을 알리는데 앞장선 장본인입니다.
당시 정 신부가 작성한 성명에는 “비상계엄이라는 허울 속에 정부 당국의 거짓된 발표와 통제된 언론의 편향보도로 인하여 철저히 왜곡되어 있다”고 비판하며 “사태의 원인이 계엄군의 무자비한 탄압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이 성명서는 당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서울대교구 명동성당 주교관에서 모임을 갖고 광주사태의 진실을 알리는 것이 급한 상황에서 공신력 있는 단체의 증언이 시급하다는 결론에 따라 만들어진 것으로 교구 신부들이 성명을 만장일치로 채택한 뒤 대량으로 복사돼 한국 천주교회 모든 교구에 전달되면서 광주의 참상을 알리는 소중한 자료가 됐습니다.
당시 이 같은 활동을 이유로 보안대에 연행돼 보름정도 구금됐던 정 신부는 5.18광주진상과 관련된 유인물을 작성하게 된 배경과 배부과정 등에 대해 심한 추궁을 받는 등 고초를 겪었습니다.
이 같은 신군부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정 신부는 5.18관련 구속자들의 석방을 위해 가족들과 함께 했고, 특히 광주대교구 정평위원장으로 활동하던 1985년 5월에는 5.18과 관련된 천주교회의 활동을 책으로 엮은 ‘광주의거자료집’을 발간하며 5.18의 진상을 교회 안팎으로 알리는데 커다란 역할을 했습니다.
정 신부는 생전 5.18과 관련한 구술증언(5.18의 기억과 역사 5-천주교편<5.18기념재단刊, 2013>)에서 “우리나라에서는 5.18의 숭고한 정신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라는 사실이 안타깝다”며 왜곡과 폄훼에 대해 안타까움을 드러낸 뒤, “그만큼 신군부의 5.18당시 탄압과 음모의 후유증이 심했고 억압이 짙었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광주 5.18정신이 우리 민족의 고귀한 정신적 자산으로 사회에 통용되고, 또 후손들이 지향해야 할 삶의 방향으로 설정하는 방법을 모색하자”고 당부했습니다.
한편 故 정형달 신부의 분향소는 천주교광주대교구청 성당에 마련됐으며, 장례미사는 오는 19일 오전 10시 염주동본당에서 광주대교구장인 김희중 대주교가 주례한 가운데 봉헌할 예정이며 장지는 담양천주교공원묘원입니다.
<저작권자(c)광주가톨릭평화방송, 무단전재-재배포금지>
향년 78세입니다.
천주교광주대교구청 성당에 마련된 정 신부의 분향소에서는 오늘(16일)밤 8시 교구장인 김희중 대주교와 옥현진 총대리주교, 교구청 사제, 유가족 등이 참례한 가운데 첫 위령미사를 봉헌했습니다.
이날 위령미사는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철저히 준수한 가운데 필수 인원만 참례했습니다.
옥 주교는 강론에서 “자신이 초등학생 시절 본당 복사로 활동할 당시 본당에 부임하셨던 신부님과의 첫 만남이 기억난다"고 회고한 뒤, “신부님의 첫 인상은 안경 너머로 날카로운 눈매를 보였지만 강론을 들으면서 신부님처럼 훌륭한 사람이 돼야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습니다.
옥 주교는 이어, “신부님께서 '착한 사마리아인'과 관련된 강론을 하시면서 우리가 고통당한 사람, 어려운 사람을 외면하면 우리의 마음은 ‘사막’과도 같다고 하셨는데 지금도 어릴적 당시 들었던 신부님의 말씀이 생생하다”며 “자신의 성소의 시작은 바로 신부님과 만남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신부님께서는 평생 남에게 폐 끼치는 것을 싫어하셨고, 후배 사제들에게 모범이 되셨으며, 정의가 무엇인지를 온 몸으로 보여주셨다”고 기억했습니다.
끝으로 옥 주교는 “생전 신부님의 강론 말씀처럼 우리 마음이 사막과 같지 않도록 그런 사제로, 또 그런 일꾼으로 살아가겠다고 다짐한다”며 “여러분도 주변에 어려운 사람, 힘든 사람을 위하는 삶을 살아가면 좋겠다”고 당부했습니다.
한편 故 정형달 신부는 1943년 9월 전남 나주에서 태어나 1969년 12월 16일 사제품을 받았습니다.
이후 장성본당과 남동본당 보좌신부를 거쳐 해남본당과 서교동본당, 신동본당, 농성동본당 주임신부를 지냈습니다.
또, 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해 용당동본당, 임곡본당, 옥암동본당 주임신부를 지낸 뒤 운암동본당 주임신부를 끝으로 2011년 7월 27일 퇴임식을 갖고 42년간의 사목활동을 마감했습니다.
故 정형달 신부는 계엄군 학살의 공포가 채 가시기 전인 1980년 6월 광주대교구 사제단이 광주항쟁 이후 최초로 발표한 ‘광주사태의 진상’이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직접 작성한 주인공으로 ‘광주의 진실’을 알리는데 앞장선 장본인입니다.
당시 정 신부가 작성한 성명에는 “비상계엄이라는 허울 속에 정부 당국의 거짓된 발표와 통제된 언론의 편향보도로 인하여 철저히 왜곡되어 있다”고 비판하며 “사태의 원인이 계엄군의 무자비한 탄압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이 성명서는 당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서울대교구 명동성당 주교관에서 모임을 갖고 광주사태의 진실을 알리는 것이 급한 상황에서 공신력 있는 단체의 증언이 시급하다는 결론에 따라 만들어진 것으로 교구 신부들이 성명을 만장일치로 채택한 뒤 대량으로 복사돼 한국 천주교회 모든 교구에 전달되면서 광주의 참상을 알리는 소중한 자료가 됐습니다.
당시 이 같은 활동을 이유로 보안대에 연행돼 보름정도 구금됐던 정 신부는 5.18광주진상과 관련된 유인물을 작성하게 된 배경과 배부과정 등에 대해 심한 추궁을 받는 등 고초를 겪었습니다.
이 같은 신군부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정 신부는 5.18관련 구속자들의 석방을 위해 가족들과 함께 했고, 특히 광주대교구 정평위원장으로 활동하던 1985년 5월에는 5.18과 관련된 천주교회의 활동을 책으로 엮은 ‘광주의거자료집’을 발간하며 5.18의 진상을 교회 안팎으로 알리는데 커다란 역할을 했습니다.
정 신부는 생전 5.18과 관련한 구술증언(5.18의 기억과 역사 5-천주교편<5.18기념재단刊, 2013>)에서 “우리나라에서는 5.18의 숭고한 정신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라는 사실이 안타깝다”며 왜곡과 폄훼에 대해 안타까움을 드러낸 뒤, “그만큼 신군부의 5.18당시 탄압과 음모의 후유증이 심했고 억압이 짙었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광주 5.18정신이 우리 민족의 고귀한 정신적 자산으로 사회에 통용되고, 또 후손들이 지향해야 할 삶의 방향으로 설정하는 방법을 모색하자”고 당부했습니다.
한편 故 정형달 신부의 분향소는 천주교광주대교구청 성당에 마련됐으며, 장례미사는 오는 19일 오전 10시 염주동본당에서 광주대교구장인 김희중 대주교가 주례한 가운데 봉헌할 예정이며 장지는 담양천주교공원묘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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