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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김성용 신부, 80년 5월 당시 전교사 부사령관과 나눈 대화 내용 최초 공개...."당시 광주통합병원 냉동실에 軍사
- 작성자 : 관리자
- 등록일 : 2019-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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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의 산증인인 천주교광주대교구 김성용 신부의 모습 |
ⓒ 광주가톨릭평화방송 |
(광주가톨릭평화방송) 김선균기자 = 80년 5.18 당시 시민수습대책위원으로 활동했던 천주교광주대교구 김성용 신부가 80년 5월 27일 전남도청이 계엄군에 의해 진압되기 직전인 5월 26일 전교사 김기석 부사령관과 가진 대화 내용을 일반에 처음으로 공개했습니다.
김 신부는 어제(13일)저녁 광주 남동5.18기념성당에서 봉헌한 5.18 39주년 기념미사에서 80년 5.18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아직도 5.18유공자들에 대해 '괴물집단' 운운하는 이들이야말로 진짜로 '괴물집단'이다"고 비판했습니다.
김 신부는 특히, “자신이 80년 5월 26일 다른 수습위원들과 함께 상무대에 들어가 당시 별 두 개를 달고 있던 군 장성과 4시간에 걸쳐 담판을 벌였다”며 전교사 김기석 부사령관과 나눈 대화 내용을 공개했습니다.
김 신부는 "30여년이 지난 지금 당시 김 소장과 나눈 대화를 일부라도 증언하는 것은 산자의 책임이라 생각한다“며 ”기념미사를 봉헌하는 자리에서 무겁지만 시원하게 말씀드리고 언제든지 주님이 데려가는 순간까지 평화롭게 살고 싶다"고 공개 이유를 밝혔습니다.
당시 김 신부는 전교사 부사령관이었던 김 소장에게 "세상에 어떻게 죽은 여인의 젖가슴까지 악랄하게 도려내냐며 강하게 항의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대해 김 소장은 "자신도 현장에서 젖가슴을 예리한 칼로 도려낸 것을 봤는데 정작 군인들은 그런 칼이 없다"며 항변하자, 김 신부는 "도둑도 없었고 나눔과 연대를 실천하던 자랑스러운 광주시민 중에 그런 사람은 없다"며 맞섰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그 자리에서 김 소장은 "군 병원인 일칠병원(당시 국군광주통합병원)냉동실에 군인들의 시신이 너무 많아서 포개놨다"며 "(김 신부에게)가서 확인해 봐라"고 말한 것으로 김 신부는 기억했습니다.
김 신부는 "이는 당시 군 당국의 발표와는 달리 아군끼리 오인 사격이나 교전 등으로 많이 죽었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당시 자신이 수습대책위원회 대변인을 맡아 너무나 지쳐 있던 상황에서 그것을 직접 보지 못한 것이 지금 생각하면 너무 후회스럽다"고 안타까워했습니다.
80년 5월 26일 당시 상무대에서 가진 수습대책위와 김 소장과의 대화는 오전 10시에 시작해 오후 2시 30분까지 무려 4시간 30분 동안 진행됐으며, 대책위는 '수습을 위한 시간을 줄 것'과 '전차를 이동시킨데 대한 사과', '군의 광주 진입 반대', '경찰이 치안을 담당할 것' 등을 요구했습니다.
김 신부는 "공수부대의 투입이 1차 살육이었다면, 수습작전은 2차 살육 작전이었다"며 치를 떨었고, "자신도 조비오 신부의 증언처럼 헬기에서 사격을 하는 소리를 똑똑히 들었다"고 증언했습니다.
김 신부가 증언한 80년 5월 26일 당시 김 소장과 직접 나눈 대화 내용 일부는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에서 발간하는 ‘기쁨과 희망’ 22호에 인터뷰 형식으로 실렸습니다.
김성용 신부는 지난 1963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월산동본당 주임신부와 교구청 관리국장, 완도본당과 무안본당 주임신부를 거쳤으며, 80년 5.18 당시 남동성당 주임신부로 사목하면서 시민수습대책위원회 대변인으로 활동하다 고등군법회의에서 12년형을 선고받고 1년 만에 석방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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