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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소식

CBCK낙태죄 법안 폐지 논란에 대한 한국 천주교회의 입장

  • 작성자 :  관리자
  • 등록일 :  2017-11-23
  • 조회수 :  297

“살인해서는 안 된다”(탈출 20,13)

- 낙태죄 법안 폐지 논란에 대한 한국 천주교회의 입장 -


최근 청와대 누리집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낙태죄 폐지 논란과 관련하여 한국 천주교회는 심각한 우려와 함께 낙태죄 폐지 반대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자 합니다. 이미 한국 천주교 주교단은 1992년 당시 낙태를 허용하고자 하는 형법 개정안 제135조 에 대한 반대 성명을 발표하면서 이 법안의 통과 저지를 위해 1백만 서명운동에 돌입하여, 105만 9035명의 서명을 받아 국회에 제출한 바 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우리는 2012년 헌법재판소가 형법상 낙태죄에 대한 위헌 소송에서 현재의 낙태죄가 합헌이라는 결정을 내린 것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당시 헌법재판소는 결정문에서 “태아가 비록 생명 유지를 위해 모에게 의존해야 하지만 그 자체로 모와 별개의 생명체이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한 인간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므로 태아에게도 생명권이 인정되어야 한다.”고 명시하면서 “태아가 독자적 생존 능력을 갖추었는지 여부를 그에 대한 허용의 판단 기준으로 삼을 수는 없다”고 밝히면서 나아가 “임신부의 자기결정권이 태아의 생명권 보호라는 공익에 비해 결코 중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태아의 생명도 당연히 어머니의 생명과는 독립된 개별 인격이고, 따라서 태아도 우리와 동일한, 어느 누구와도 차별되지 않는 생명권을 누릴 권리가 있다는 것이 우리 모두의 상식입니다. 그런데 그 고귀한 생명권이 타인의 이기심 때문에 침해당하는 것이 가능한 일이겠습니까? 인간 생명을 침해하는 범죄들 가운데 태아를 고의로 낙태하는 것은 살인과도 같은 ‘유아 살해’이며, ‘흉악한 죄악’이 아닐 수 없습니다(제2차 바티칸 공의회, 사목헌장 51항 참조). 이에 한국 천주교 주교단은 “인간의 존엄성과 그 생명권의 불가침성, 인공유산의 죄악성에 대해서 1961년 이래 이미 십여 차례 이상 교회의 입장을 밝혔고, 1991년 12월 8일 인권주일을 기해 낙태는 분명 살인행위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인명 경시 풍조의 근원임을 천명하면서 인명 존중의 새 문화 창조를 모든 신자들과 선의의 국민들에게 호소”(한국 천주교 주교단 성명서 ‘태아의 생명을 죽이지 말라’, 1992년 7월 13일)하였습니다.

가톨릭교회의 교리는 “살인해서는 안 된다”(탈출 20,13)는 계명과 “죄 없는 이와 의로운 이를 죽여서는 안 된다”(탈출 23,7)는 하느님의 법은 언제나 모든 사람이 예외 없이 지켜야 하는 살아 움직이는 법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나아가 ‘살인해서는 안 된다’는 계명은 ‘고의적이고 직접적인 살인’을 중대한 죄로 금할 뿐 아니라 “살인자와 살인에 일부러 협력하는 자는 하늘을 향해 복수를 부르짖게 하는 죄를” 범하는 자와 다르지 않습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2268항 참조).

모든 인간 생명은 수정되는 순간부터 아버지의 것도, 어머니의 것도 아닌, 새로운 한 사람의 생명으로 보호되어야 하고, 그 존엄성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은 우리의 확고한 믿음이며, 우리 교회가 양보할 수 없는 기본적인 가르침입니다(「인공유산 반대선언문」 참조). 그러므로 태아의 생명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엄연한 한 인간 존재로 보호되어야 하는 것은 한 사람의 온전한 인격체인 태아의 기본적 권리입니다. 아기를 임신하고 있는 어머니의 자기 결정권이 태아의 생명권보다 더 소중합니까? 혹은 어머니의 사회경제적 사유가 태내의 아기를 죽일 수 있는 판단 기준이 될 수 있겠습니까? 사회 일각에서는 낙태죄를 폐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유지해야 한다는 여론보다 더 우세하기 때문에 그 여론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현재 헌법소원 심리 중에 있는 헌법재판소를 압박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생명은 결코 다수의 의견으로 생사가 갈릴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직시해야만 합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주체는 국가입니다. 국가가 온 힘을 다해 추구하고 실현시키고자 하는 공동선은 우선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무고하고 스스로를 보호하지 못하는 약한 생명, 소외된 생명에 대한 관심과 보호 그리고 존중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아기의 임신 때문에 사회경제적 상황으로 아기를 포기하려는 여성들이 힘들어한다면 국가는 낙태를 허용함으로써 그 여성들의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다고 여겨서는 안 됩니다. 여성의 자기 결정권과 여성 건강권이라는 명분으로 인간 생명을 내칠 수는 없습니다. 이제라도 국가는 생명존중에 대한 구체적이고 효과적이며, 또한 명예로운 대책을 강구하는 적극적인 정책을 펼칠 수 있어야 합니다.

작금의 낙태죄 폐지 논란의 현실을 보면서 우리 모두의 깊은 성찰이 필요한 때입니다. 우리의 삶과 의식 속에 어느덧 ‘죽음의 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의 뜻을 저버리고 있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의 깨어있는 양심이 더욱 요구되고 있습니다. “그 누구도 자기 자신이나, 자기의 보호에 맡겨진 다른 사람들을 죽일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할 수 없으며, 명백하게든 암묵적으로든 이러한 행동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어떠한 권위도 합법적으로 이러한 행위를 권장하거나 허락할 수 없습니다”(「생명의 복음」, 57항).

                                                       2017년 11월 21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
위원장  이 용 훈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