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소식
교구[가톨릭신문] 장애인의 날에 만난 사람 천노엘 신부
- 작성자 : 관리자
- 등록일 : 2015-04-24
- 조회수 : 606
“자기 아내가 불치병에 걸려 누워있으면 어떻게 해야겠어요. 당연히 간병을 해야죠. 그런데 간병을 열심히 했다고 상을 받으면 아내의 마음은 어떻겠어요. 아프겠죠.”
34년 간 장애인들을 위해 헌신한 천노엘(패트릭 노엘 오닐·83) 신부는 장애인들을 도왔다는 이유로는 어떠한 상도 받지 않았다. 1997년 장애인 인권상 수상자로 선정됐음에도 거절했고, 포스코 청암상 봉사상도 여러 차례 거절한 끝에 천 신부 개인이 아닌 무지개공동회가 받았다. 천 신부에게 장애인들은 말 그대로 ‘가족’이다.
“광주대교구로 와서 20년 넘게 본당 사목을 했어요. 장애인 사목에 큰 관심은 없었죠. 그러던 중 북동본당 주임을 맡게 됐고 무등갱생원을 알게 됐어요.”
1932년 아일랜드 출생인 천 신부는 1956년 사제품을 받고 이듬해 한국으로 건너왔다. 북동본당 주임 당시 알코올중독자, 노인, 고아, 발달장애인 등 600여 명을 모아놓은 시설인 무등갱생원을 알게 됐고, 레지오 단원들과 함께 종종 봉사를 다녀왔다.
“그때부터 발달장애인들에게 관심을 갖게 됐어요. 알코올중독자나 노인이나 모두 담배가 필요하면 달라고 말할 수 있고, 자신들의 주장을 입 밖에 낼 수 있지만 발달장애인들은 전혀 그러지 못하니까. 그때 이 사람들의 대변인이 돼야겠다고 생각했죠.”
북동본당 주임을 마친 천 신부는 농성동본당 주임으로 이동했다. 무등갱생원은 농성동본당 관할이었기 때문에 천 신부는 레지오 단원들뿐만 아니라 사목회장과도 함께 갱생원에 방문했다.
“하루는 젊은 봉사자에게 다급한 전화가 왔어요. 발달장애인 아이 하나가 위급하다고 빨리 와달라는 전화였죠. 급성 폐렴으로 누워있는 아이에게 대세를 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아이는 세상을 떠났어요.”
‘여아’라는 이름의 열아홉 살 여자아이의 죽음은 천 신부에게 큰 울림을 가져다줬다. 더욱이 연고가 없는 여아의 장례비용을 다 지불할 테니 시신을 기증해달라는 병원의 제안에 더욱 충격을 받았다. 천 신부는 병원의 제안을 “살아서 인간 대접을 받지 못했는데 죽어서도 그렇게 할 수는 없다”고 말하며 거절했다.
“지금도 가끔 여아의 묘지에 가서 벌초를 해요. 묘비를 보면서 발달장애인들을 위해 더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하죠.”
여아의 묘비에는 ‘나를 용서하시렵니까? 사회를 용서하시렵니까? 긴긴 동안 당신을 외면하였습니다’는 천 신부의 고백이 새겨져 있다. 37년 전의 일이지만 그때를 회상하는 천 신부의 눈가가 촉촉이 젖어들었다.
“마침 1981년이 UN이 선포한 장애인의 해였어요. 당시 교구장인 윤공희 대주교님을 찾아가 우리 교구에 장애인 특수사목이 꼭 필요하다고 말씀드렸죠. 교구 사제가 부족한 상황이었지만 교구장님께서 흔쾌히 허락해주셨어요.”
안식년을 맞은 천 신부는 세계 각지에서 열리는 장애인 관련 세미나에 참석하고, 시설들을 돌아봤다. 캐나다에 있는 발달장애인 공동체인 라르슈도 방문해 한 달간 있었다.
“그전까지 돌아봤던 시설들 모두가 수용시설이었어요. 저도 막연히 그런 시설을 운영할 생각이었는데, 라르슈 공동체에 있으면서 정말로 장애인들을 위한다면 그들이 인간적인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것을 느꼈죠.”
천 신부는 1981년 광주 주월동에 엠마우스복지관의 모태가 된 초창기 그룹 홈을 열었다. 주거, 여가, 직장 모두를 비장애인들과 지역사회 안에서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그룹 홈은 수용시설보다 적은 돈으로 운영됨에도 만족도가 높았다. 또한 보건복지부가 주관한 조사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았다.
“교회에는 두 가지 보물이 있습니다. 하나는 성체고 다른 하나는 소외된 사람들입니다. 두 가지 모두 똑같은 예수님입니다. 무관심에서 벗어나 보잘 것 없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라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을 따라 우리 교회의 보물에 조금 더 관심을 가졌으면 합니다.”
■ 천노엘 신부가 첫 도입한 그룹 홈은
1981년 일반 주택서 시작… 발달장애인 자립 도와
사회복지법인 무지개공동회 대표 천노엘 신부가 국내에 처음 도입한 그룹 홈(Group Home)이 지역사회에 안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룹 홈은 장애인들이 수용시설이 아닌 지역사회 안에서 거주하고, 일하고, 쉬면서 함께 살자는 의도에서 출발했다. 아파트, 연립주택, 단독주택 등 독립가옥에서 소수의 인원이 사회복지요원의 지원을 받으며 사회 자립능력을 기를 수 있도록 하고자 함이다.
그룹 홈은 장애인 수용시설에 비해 적은 돈으로 운영 가능하고, 장애인들의 자립 능력을 키워준다는 장점은 있으나 중증의 장애인에게는 적용이 불가능하며, 지역사회의 냉대라는 어려움으로 인해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지는 못하고 있다. 더욱이 직장 생활을 하는 발달장애인들의 경우에는 사기나 강매를 당하는 등의 피해가 발생해 그룹 홈 방식을 적용하고 있는 시설들에게도 부담이 되고 있다.
성골롬반 외방선교회 천노엘 신부가 1981년 광주광역시 월산동에 위치한 일반 주택에서 처음 시도한 그룹 홈은 규모가 커져 엠마우스복지관이 됐다. 이후 엠마우스복지관은 발달장애인 부모들과 함께 본인들은 물론 지역사회가 발달장애인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도록 강의를 마련하고, 발달장애인들의 활동을 소개하며, 발달장애인들이 준비한 예술제나 봉사활동을 통해 인식개선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또한 첫영성체 교재 제작과 장애인 전례 참여를 통해 교회 내에서의 활동 영역도 넓혀가고 있는 중이다.
엠마우스복지관은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공단이 장애인복지관과 사회복지관 154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4년 장애인 활동지원서비스 정기 평가에서 평균 99.5점을 받아 전국 1위를 차지했다. 또한 보건복지부가 전국 장애인복지관 182개소를 대상으로 실시한 2014년 사회복지시설 장애인복지관 평가에서도 모든 영역에서 A등급을 받아 최우수기관으로 선정됐다. 특성화사업 성인지적자폐성장애인 지원프로그램인 ‘CAPS’는 평가위원이 추천한 우수프로그램 사례로 꼽히기도 했다.
김진영 기자 (nicolao@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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