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대교구 전체메뉴 보기
메뉴 보기

교회소식

교구[평화신문] 세월호 1년, 아픔의 현장 지키며 치유와 위로를

  • 작성자 :  관리자
  • 등록일 :  2015-04-24
  • 조회수 :  614
팽목항 현장을 가다 , 최민석 신부(팽목항 성당 상주)

진도 팽목항. 이곳엔 세월호 희생자 304명의 안식과 그 유가족, 특히 아직 찾지 못한 세월호 실종자 9명의 가족을 위로하기 위한 기도처인 천막 성당이 있다.

세월호 희생자 수색 작업이 한창이던 지난해 시신 안치소가 있던 자리에 세워진 천막 성당은 죽은 자녀와 산 부모가 마지막으로 재회했던 장소이다. 이 성당에선 매일 무고하게 희생된 이들과 가족들의 상처가 치유되길 비는 주님의 희생제사가 봉헌되고 있다. 이 치유와 위로의 팽목항 현장 한가운데에 최민석(광주대교구 사회복지 담당) 신부가 홀로 사목하고 있다.


슬픔은 떠나지 않고



3월 18일 낮. 진도 팽목항 천막 성당에 들어섰을 때, 최 신부는 한쪽 구석에서 전기장판 한 장으로 비바람에 언 몸을 막 녹이고 있었다. 지난 1월부터 이곳에 터한 그는 몇 달 새 무척 수척해 있었다.

가슴 한가운데 커다란 돌덩이를 얹은 것처럼 답답하기만 하다는 그는 유족들이 자신으로 인해 혹 또 다른 상처를 입을까 매사 조심한다. 말 한마디 표정 하나 신경 쓰다 보니, 웃음기 없는 얼굴로 생활하기 다반사다. 실종자와 희생자 가족의 슬픔에 비할 수 없지만, 최 신부는 팽목항에 내려오기 전부터 이들과 하나였다.

최 신부가 팽목항을 떠나지 않는 이유는 세월호 사고 현장에서 가장 가까운 이곳에서 여전히 눈물을 흘리고 있는 이들을 보듬고, 희생자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서다.

최 신부는 팽목항 인근 진도성당 사제관에서 잠만 잔 뒤 매일 오전 9시 30분 이곳으로 와 분향소에 상주하는 유가족들을 만나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한다. 종교가 없는 이들도 사제가 매일 찾아오는 것에 힘을 얻는다. 최 신부는 참사 이후 희망을 잃어가는 유가족들에게 먼저 다가가 그들의 거칠어진 손을 잡는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예수님께서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루카 10,37)고 당부하신 것처럼, 세월호 유족은 곤경에 처한 우리 시대의 어려운 이웃이 아닐 수 없다.

“한 유가족은 ‘내가 왜 죽었는지 진실을 밝혀 달라’는 죽은 자녀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아 일상으로 돌아갈 수가 없다고 했어요.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시신이 전부 수습될 때까지 여기를 떠나지 않을 겁니다.”

지난해 11월 정부가 실종자 수색을 종료한 뒤 팽목항과 진도체육관에 가득했던 부스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그럼에도 천주교는 굳건히 팽목항을 지키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교회는 위로가 필요한 이들을 돌보는 ‘야전병원’이 돼야 한다”며 세상 사람과의 참된 형제애를 통해 구원의 메시지를 선포할 것을 당부한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비바람이 세차게 몰아친 이날 오후 4시 천막 성당에선 어김없이 미사가 봉헌됐다. 광주대교구 본당들이 돌아가며 평일 미사를 드리는데, 이날은 광주 염주동본당 주임 강요섭 신부와 신자 10여 명이 참례했다. 미사에 앞서 바친 ‘세월호 십자가의 길’ 기도 때에는 모두가 눈물을 쏟았다. 돌아가신 예수님을 끌어안고 눈물을 쏟았을 성모 마리아의 모습이 겹쳐졌다.

천막 성당을 세 번째로 찾았다는 최정애(안젤라, 58)씨는 “자식 키우는 부모 마음은 다 같다”며 “세월호가 점점 잊히는 것 같아 너무 안타깝다”고 흐느꼈다. 팽목항 분향소에서 만난 세월호 유가족 유영민(47)씨는 “신자는 아니지만,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아직도 우리를 기억하고 계시다는 소식에 크게 감동했다”며 “팽목항을 떠나지 않고 위로해주는 천주교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교회는


교회는 세월호 실종자와 유가족들과 연대해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해 8월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며 말과 행동으로 절망하는 이들의 손을 잡아줬다. 교황은 귀국 비행기 안에서도 “위로가 죽은 생명을 살릴 수는 없지만, 인간적으로 다가가는 것은 유족들에게 힘을 준다. 여기에 연대가 있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최근 열린 앗 리미나(사도좌 정기 방문) 때 한국 주교단과의 첫 인사에서 세월호에 대해 질문했고, 이러한 사실은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들에게 더 없는 위로가 돼줬다.

한국 교회 역시 세월호 희생자와 가족들을 위한 기도와 연대의 끈을 이어갔다. 강우일(제주교구장) 주교는 지난해 5월 ‘세월호 참사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성찰’이라는 특별 기고를 통해 “불의를 보고도 침묵하고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것은 악을 수용하고 협조하는 죄”라며 “우리 사회의 불의와 비리의 고리를 파쇄하기 위해 우리 각자 할 역할을 찾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서울대교구를 비롯한 전국 교구들도 지난해 참사 직후인 4월부터 각 성당에서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한 기도회와 미사를 이어갔고, 성모성월인 5월에는 세월호 참사 애도와 함께하는 성모의 밤을 봉헌했다.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수원교구는 안산 세월호 희생자 정부 합동 분향소 옆 부스에서 지금까지 매일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또 지난해 12월부터 ‘천주교 수원교구 안산 생명센터’를 개소, 생존자와 유가족 등의 심리 안정을 꾀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광주대교구는 팽목항과 진도체육관에 부스를 설치하고 매일 미사를 봉헌해왔다. 올 1월에는 ‘세월호 1주기 준비위원회’(위원장 옥현진 주교)를 발족, 사순 시기 영성 운동과 사순 특강도 펼치고 있다. 4월 16일에는 팽목항에서 ‘세월호 1주기 추모 미사’를 봉헌할 계획이다.

한편 의정부교구 정의평화위원회는 21일 진도 팽목항 방파제에서 의정부교구 신자 800여 명이 참례한 가운데 세월호 1주기 기억 미사를 봉헌했다. 이날 미사에 참례한 신자들은 봉헌금 656만 6000원을 최민석 신부에게 전하기도 했다. 이힘 기자 lensman@pbc.co.kr



팽목항 성당에 상주하는 최민석 신부
“십자가 죽음으로 세상을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세월호는 우리나라의 십자가입니다. 세월호 사건을 잊는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최민석 신부는 “고통 속에 사는 우리 이웃의 목소리를 들어주기 위해 여기 와 있다”며 “신앙인이라면 이들의 목소리 연대하고 위로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월호 희생자 유족이 소망하는 것은 선체 인양, 9명의 실종자 시신 수습, 진상 규명”이라며 “팽목항 사목 활동이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와 도움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안타까워했다.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들은 고통으로 신음하는 우리 시대의 이웃입니다. 교회는 마지막 한 사람의 실종자를 찾을 때까지 함께할 것입니다.”

글·사진=이힘 기자 lensman@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