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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소식

교구[뉴시스] 주교성성 50년 윤공희 대주교 "시련이 남긴 교훈 새겨야"

  • 작성자 :  관리자
  • 등록일 :  2013-10-24
  • 조회수 :  553
【광주=뉴시스】류형근 기자 = 17일 오후 광주 서구 쌍촌동 가톨릭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윤공희(88) 빅토리노 대주교가 주교성성 50주년 기념행사를 앞두고 5·18 등 역사 현장에서 느꼈던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다. 천주교광주대교구는 22일 오전 10시30분 주교좌 임동 성당에서 광주대교구 제7대 교구장을 역임한 윤공희 빅토리노 대주교의 주교성성 50주년 기념식을 개최한다. 2013.10.17. hgryu77@newsis.com 2013-10-17


【광주=뉴시스】류형근 기자 = "시련속에서 남겨진 교훈을 새기지 못한다면 역사에서 알아야 할 것도 배우지 못하는 것이다"

윤공희(88) 빅토리노 대주교는 17일 오후 광주 서구 쌍촌동 가톨릭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천주교 주교성성 50주년을 앞두고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말했다.

윤 대주교는 평남 진남포 출신으로 함남 덕원신학교를 수료한 뒤 1950년 지학순 주교와 함께 월남했고 로마 그레고리안대학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전쟁 당시 UN의 정훈 신부 자격으로 포로수용소에서 근무한 윤 주교는 이념에 상관없이 포로들과 함께했다.

이후 1963년 10월20일 주교품을 받은 윤공희 대주교는 1973년 11월30일에 제7대 광주대교구장으로 착좌한 후 27년 동안 교구를 위해 헌신했다. 재임기간인 1970년부터 1990년대에는 인간의 자유와 기본 인권이 유린되는 상황(1976년 함평 고구마 사건,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등)에서 사회정의 실현과 인간성 회복을 위해 앞장섰다.

천주교 주교성성 50주년을 맞은 윤 대주교는 이날 기자회견 자리에서 한국 현대사를 경험한 소회를 담담하게 풀어냈다.

윤 대주교는 "1950년 3월 밤에 신부가 됐다"며 "하지만 전쟁이 시작됐고 평양이 수복 됐을 때 내려왔다"고 밝혔다.

이어 "UN의 보좌 신부로 고용돼 포로수용에서 포로들과 함께 했다"며 "포로들을 만나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고 신자가 되고 싶은 사람은 가르치고 미사를 드렸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는 "하지만 당시 포로수용소에는 결핵환자를 비롯해 이질 환자, 중환자들이 많았다"며 "죽음을 앞둔 중환자가 교리를 듣고 싶다고 해서 들려 주었는데 다음날 다시 찾아 가보면 숨져 있었다"고 회상했다.

윤 대주교는 "내려온 이후 고향에 한번도 가보지 못했지만 꿈에서도 고향이 보이고 덕원신학교에서 같이 공부했던 선후배 신부님들 중 납치된 분도 있지만 그분들을 늘 마음에 새기고 있다"고 말했다.

윤 대주교는 80년 5월 광주를 회상하면서는 2가지 후회하는 일을 떠올리며 잠시 말을 멈추기도 했다.

그는 "광주에서 27년 대주교로 지내면서 5·18을 경험했다"며 "(80년 5월)18일 새벽에 계엄군이 사방에 깔렸고 군인들이 집을 찾아다니며 젊은 이들을 때리고 옷을 벗겨 잡아가는 것을 가톨릭센터에서 내려봤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 모습은 트럭에 실려가는 돼지처럼 보였다"며 "군인들이 사람으로 대하는 것 같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어 "어떤 집 앞에서 머리 앞 뒤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젊은이를 발견했지만 도와주지 못하고 외면했던 것이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다"고 성서(강도를 당한 사람을 사제는 외면했지만 이교도가 보고 치료를 해주는 내용)에 빗대 설명했다.

또 윤 대주교는 "당시 수천명이 잡혀간 것에 대해 남동성당에서는 시국미사를 진행하려 했지만 미사를 앞두고 군인들이 성당을 포위하고 미사를 하지 못하게 했다"며 "그 때는 또 무슨일이 생길 것 같고 겁이나서 미사직전에 포기를 했다"고 밝혔다.

윤 대주교는 이후 "한 신부가 찾아와 '꼬리 내린 것처럼 됐다'고 말해 실수했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군부대가 오라고해서 찾아갔는데 군인들이 '내란음모 혐의로 조사를 받았고 심정의 변화를 일으켜 내보내기로 결정했다'는 내용이 적힌 종이에 사인을 하라고 해서 거절했다"고 말했다.

5·18이 주는 교훈에 대해서는 "민주주의라는 것은 국민이 만들어낸 것이다"며 "정치하는 사람도 인간의 기본권리를 먼저 생각하고 공동선을 위해 일해야 하며 광주의 시련과 고생을 바탕으로 인간의 기본권과 인권을 신장하고 자기완성을 위해 살아갈 수 있는 민주사회를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아직도 5·18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도 있지만 또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역사적인 교훈과 희생의 가치가 있는 사건을 잊어 버려서는 안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최근 교구 중심으로 대선개입 서명운동과 선언문 발표가 이어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5·18 상황에 빗대 "5·18 당시 누군가는 지침을 했을 것이고 뭔가를 말했을 것이지만 밝혀지지 않고 있다"며 "양심 선언을 한다던가 이런것이 아니면 밝혀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구체적으로 말할 입장은 아니지만 정의평화위원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참여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윤 대주교는 또 "용서라는 것은 그것을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고 마음의 용서와 진정한 정의에 대한 요구를 같이 할 수 있는 것이다"고 덧붙였다.

주교성성 50주년 앞둔 것과 관련해서는 "인간으로서 일을 했다고 칭찬받거나 영광을 받을 일은 없다"며 "미천한 사람이 교회안에서 사도직을 이어가게 하고 이끌어 주심에 대해서 감사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hgryu77@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