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목자료
교구3개년 특별 전교의 해즐거웠던 일들만 가슴에 새기자 - 2021년 3월 14일 주보 발췌
- 작성자 : 홍보
- 등록일 : 2021-03-16
- 조회수 : 52
즐거웠던 일들만 가슴에 새기자
옛말에 은인은 돌에 새기고 원수는 물에 새기라고 했다. 나 역시 기뻤고 행복했던 일들은 마음에 담고 언짢은 것들은 물에 흘려보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신혼의 단꿈보다는, 네 살짜리에서 군대에 간 시동생까지 16명의 식구에 도시락을 8개나 싸야 하는 시집살이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으니, 어찌 바람 잘 날이 있었을까? 남편은 시어머니와 시누이, 마누라의 세 여자 사이에서 불편했던지, 아예 집에는 늦게 들어오기 일쑤였고 가끔은 외박도 했다. 그래도, 배가 남산만큼 부른 아내를 데리고 나들이를 할 때는, 얼굴에 기미가 생길까 봐 허리를 굽혀가며 양산을 받쳐주던 자상한 남편이기도 했다.
시장에 다녀오셔서 “세상에 그렇게 못생긴 여자는 처음 봤다. 그런데, 어쩌면 꼭 너를 닮았어야.”하시던 어머니, 남들이 가족사진 속의 나를 보고 예쁘다고 치사해주면
“예? 우리 집으로 시집와서 나무 양푼이 쇠 양푼 됐어라”라며 그저 못마땅해하셨던 어머니도 며느리를 따라 천주교인이 되셨고 90세가 넘어서는 “왜 너의 아버지가 너를 그리 며느리 삼고 싶어 하셨는지 알 것 같다.”며 그동안의 수고를 다독여주시기도 했다.
시동생이 노름으로 큰 살림을 잃었을 때, 동서가 이혼을 선언했다. 나는 애들을 보고 참고 살라고 말하지 않고, 동서를 사랑해 준 서방님의 실수에 그동안의 고마움을 떠올리며, 용서해 줄 구실을 찾아보자고 했다.
“잘해준 것도 없고, 고마운 것도 없어요.”라며 톡 쏘아붙이던 그녀도, 20년을 살면서, 아름답고 소중한 추억이 없겠느냐는 설득에 서서히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힘을 내어 다시 잘 살아보겠노라며 남편을 용서했다.
딸 셋을 낳고 아들을 낳았을 때,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기쁨, 세 명의 사위가 모두 천주교 신자여서, 한 식탁에 앉아 식사 전 기도를 함께 드릴 때의 감격, 감사가 절로 나오는 행복한 순간들이었다.
병든 조개만이 진주를 품는다 하던가. 비 온 뒤에 무지개가 피듯, 사랑의 하느님이 잘 이끌어 주시리라는 굳은 믿음으로 살다 보니, 고달팠던 지난 삶도 은은한 진줏빛으로 물들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박양순 한나 쌍촌동 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