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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화문

2019년 교구장 성탄메시지

  • 작성자 :  관리자
  • 등록일 :  2019-12-13
  • 조회수 :  601

“얼마나 아름다운가, 산 위에 서서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의 저 발!

평화를 선포하고 기쁜 소식을 전하며 구원을 선포하는구나”

(이사 52,7)




  아기 예수님의 성탄은 평화를 찾는 사람들에게는 평화의 길이 되고, 구원을 갈망하는 인류에게는 참 빛이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되심으로, 자신을 낮추고 비우는 참사람이 되는 길이 비로소 열렸으며, 세상의 어둠과 암흑을 깨고 모든 것을 새롭게 변모시키는 희망의 새벽이 마침내 시작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시어 우리와 함께 사셨다(요한 1,14 참조)

  오늘의 우리 사회에서 가장 안타까운 일은 우리 모두가 인간의 존엄성과 품위를 점점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린 아이들은 이미 태어날 때부터 서로 건너갈 수 없는 부와 가난 사이의 큰 구렁에 직면해야 하고, 끝없는 경쟁을 시작해야 합니다. 젊은이들은 좁고 높은 취업의 문 앞에 서서 인간적인 자존감을 버겁게 지켜가야 할 처지입니다. 많은 어르신들은 빈곤과 병고에 시달리며 쓸쓸한 노년의 삶을 힘겹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 노동은 냉혹한 자본의 힘에 밀려나 그 가치와 그 참뜻을 실현시키는 것이 매우 어렵게 되었습니다. 낯선 외국인들, 이주민들,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배제의 문화는 보다 다양하고 적극적인 환대의 문화로 변모되어야 합니다. 자본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이른바 ‘나 홀로’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확대되었고, 자기 나름대로의 가치 있는 삶을 추구하려는 ‘주체적인 삶’은 어려워졌으며, 또한 ‘더불어 사는 공동체성 회복의 삶’을 이루는 것도 더더욱 힘들어졌습니다.

  나아가, 이른바 갑질문화, 배척의 이데올로기 그리고 인종적, 종교적, 언어적, 문화적, 정치적 다름을 존중하지 못하는 배타적 문화는 인간의 존엄성과 품위를 훼손합니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다양성 속의 일치를 이룰 수 없고, 적대와 대결의 문화가 지배하며, 또한 평화와 화해, 용서가 싹트기 어렵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다양한 문화의 교류가 서로의 문화를 성장시킬 수 있는 힘이므로 이주민들과 난민들의 고유한 문화를 존중하고 수용할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하느님의 길은 곧 참사람이 되는 길이며, 하느님의 가르침만을 유일한 길로 선택하는 주체적이고 더불어 사는 삶의 길이기도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가난하고 무식하지만 순박한 목동들(루카 2,8-20 참조)과 박식하지만 겸손한 동방의 현자들(마태 2,1-12 참조)만이 겨우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보잘 것 없는 모습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오죽했으면 “세상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요한 1,10)고 했겠습니까. 하느님께서는 심지어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필리 2,7-8)

  하느님은 인간이 되심으로써 인간의 존엄성과 품위를 높여주셨습니다. 곧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눈먼 이들에게 빛을, 잡혀가고 억압받는 이들에게 해방을,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는”(루카 4,18-19 참조) 삶의 길을 통하여 인간의 길을 완성하셨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오늘 우리가 걸어야 할 하느님의 길을 현대 사회에 비추어 새롭게 해석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말과 행동으로 가난한 이들을 위로하고, 현대 사회의 새로운 노예살이에 얽매인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자신 안에 갇혀 제대로 보지 못하는 이들이 다시 볼 수 있도록 하고, 존엄성을 빼앗긴 모든 이가 다시 그 존엄을 찾도록 하는 것입니다.”(『자비의 얼굴』, 16항)




얼마나 아름다운가, 평화와 기쁜 소식을 선포하는 이!

  인간의 존엄과 품위는 세상의 평화 없이 이룩할 수 없습니다. 또한 “탄식하며 진통을 겪고”(로마 8,22) 있는 지구를 살리는 일에 적극 나서지 않으면 인간의 존엄과 품위 또한 온전히 지켜낼 수 없습니다. 평화는 인간의 존엄과 품위, 어머니인 지구를 지킬 수 있는 바탕입니다. 그리고 평화는 경제적, 사회적 불평등과 폭력을 극복할 수 있는 뿌리이며, 정치적, 군사적 갈등과 대결을 종식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특별히 남북 간의 평화를 위한 우리의 노력은 어떤 상황에서도 중단될 수 없습니다. 한반도에서는 “어떤 전쟁도 정당하지 않습니다. 정당한 것은 오직 하나, 평화뿐입니다.”(프란치스코 교황) 자국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추구하는 국제적 이해관계 속에 한반도의 평화를 내맡겨 둘 수는 없습니다. 남북 간의 대화를 가로막고 분단을 고착화시키는 그 어떤 정치적, 군사적 시도도 용납될 수 없습니다. 남북 간의 형제애를 증진하는 것이 한반도 평화를 자주적으로 이룩하기 위한 지름길이며, 세계 평화를 위한 버팀돌이 될 것입니다.

  하느님의 평화와 구원의 기쁜 소식은 자연의 어머니인 우리 지구를 살리는 일을 통해서도 실현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지구는 함부로 훼손당하면서도 말할 수 없는 안타까운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하나뿐인 지구를 지키기 위해서는 생태 환경을 파괴하는 이기적 탐욕에 대한 회개가 절실히 요청됩니다.



“저희 삶을 치유해주시어 저희가 이 세상을 훼손하지 않고 보호하게 하시며 오염과 파괴가 아닌 아름다움의 씨앗을 뿌리게 하소서.”(『찬미받으소서』, 우리의 지구를 위한 기도)




우리는 더 나은 세상, 아름다운 지구를 가꾸는 선교사!

  우리 그리스도인은 더 나은 세상, 아름다운 지구를 지키기 위한 그리스도의 제자요 선교사입니다. 아기 예수님의 탄생이 세상의 근본적인 변화를 위한 복음이 되었듯이, 그리스도의 제자들인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 자체도 더 나은 세상과 아름다운 지구를 지키기 위한 복음이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의 가정과 직장에서, 우리가 사람들을 만나는 곳에서, 우리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 평화가 흘러넘치도록 마음을 다합시다. 우리들의 일상 안에서 더욱 확산되는 평화는 한반도 평화를 위한 자양분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지구를 아름답게 보존하기 위한 생태 환경에 대한 회개는 우리 삶의 태도를 새롭게 하고 평화로운 삶을 위한 뿌리가 될 것입니다.

  더 나은 세상, 아름다운 지구를 지키는 일은 우리 교회가 완수하려는 복음 선교의 목표가 실현되는 것입니다. 이는 또한 교구 사목평의회가 제안하고 교구장인 제가 승인한 2020년부터 2022년까지 3년 동안 지속되는 ‘3개년 특별 전교의 해’를 알차게 지내기 위한 중요한 요소가 될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언급하신 “선교란 단순히 신자 수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신자들이 그리스도인답게 열심히 살도록 독려하는 것”임을 기억하면서, 3개년 특별 전교의 해가 지향하는 실천사항들을 통해 우리 그리스도인 모두가 선교 열정을 새롭게 하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디딤돌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2019년 11월 20일부터 23일까지,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태국 사목방문 주제 말씀은 “우리 모두 사랑과 평화의 다리를 놓읍시다.”였습니다. 끼리끼리만 어울리는 집단이기주의와 배제의 문화가 퍼져가는 우리 사회에 자신을 희생하면서 이웃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사랑과 평화의 다리를 놓는 선교사가 되기를 권고하는 이 말씀을 우리가 있는 곳에서 실천하도록 노력합시다. 이러한 우리의 삶이야말로 바로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신 성탄의 참뜻을 실천하는 길이 아니겠습니까?

   덧붙여 2020년, 우리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이합니다. ‘민주, 인권, 평화, 통일’을 바탕으로 대동사회를 지향했던 5.18 광주 민주화운동의 정신이 모든 국민과 세계인들이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는 민주사회 정신으로 확산되기를 희망합니다.

 

  인류의 희망은 세상에서 가장 보잘 것 없고 가난한 사람으로 오신 아기 예수님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은 탄생의 순간부터 마지막 삶에 이르기까지 자신을 비우시고 낮추심으로써 온 세상에 참 평화를 주셨습니다. 아기 예수님의 거룩한 탄생이 세상 모든 이의 희망이 되고 기쁜 소식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2019년 12월 25일

천주교 광주대교구 

김  희  중  히지노 대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