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화문
2017년 교구장 부활메시지
- 작성자 : 관리자
- 등록일 : 2017-04-10
- 조회수 : 549
2017년 교구장 부활메시지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루카 24,36 참조)
“어둠이 지나가고 참 빛이 이미 비치고 있습니다.”(1요한 2,8)
부활하신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온누리에 가득차고, 그 생명의 빛이 이 땅의 어둡고 고단한 삶을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비치기를 기원합니다.
부활의 징표인 평화
“평화가 너희와 함께!”(루카 24,36)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건네신 이 평화의 인사는 당신의 말씀을 믿지 못한 제자들의 불신과 절망을 믿음과 희망으로 바꿔 놓았습니다. 예수님의 평화는 스승의 죽음으로 깊은 슬픔에 잠겨 있던 제자들의 마음에 기쁨의 불꽃이 새롭게 타오르도록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온갖 두려움을 떨쳐 내고 세상 사람들을 위한 구원과 희망의 증인으로 사는 길을 평화로부터 깨닫기를 바라셨습니다(루카 24,36-49 참조). 평화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존엄하고 소중한 존재로 바라보고, 우리가 사는 세상을 보다 더 아름답게 변모시킬 수 있는 희망의 원천이기에 우리 시대에 더욱 절실히 요청되는 것입니다.
우리 시대의 징표인 평화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요한 23세 교황 회칙 <지상의 평화> 반포 50주년 연설에서 “평화 건설에 기초가 되는 것은 인간, 사회, 그리고 권위의 기원이 하느님께 있으며, 이 거룩한 기원 때문에 개인, 가정, 다양한 사회 그룹, 국가는 정의와 연대의 관계를 실현해야 합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점에서 부패하고 사유화된 국가권력을 거슬러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하여 일어난 시민들의 촛불은 평화의 징표였습니다. 우리 시민들은 비폭력의 촛불 집회를 통해 평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이 평화의 연대가 오만한 정치권력과 부패한 경제권력을 이길 수 있다는 것을 온 세상에 분명히 보여 주었습니다. 평화야말로 보다 더 나은 인간 공동체, 보다 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한 진정한 보증이요 징표임을 새롭게 확신하게 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더욱 폭넓은 평화의 연대가 필요합니다. 공동체의 평화 없이는 개인의 평화가 없고 또한 개인의 평화 없이는 공동체의 평화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특히 세월호 참사 3년째를 맞이하면서 우리는 가족을 잃고 하늘까지 닿는 슬픔과 고통을 겪고 있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을 기억합니다. 아직 찾지 못한 가족들을 절박하게 기다리는 분들의 마르지 않는 눈물 또한 잊을 수 없습니다. 수많은 아까운 생명을 죽음에 빠뜨린 참사의 진상이 의문의 여지없이 규명되어야 합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미수습자 가족의 슬픔과 연대 없이, 참사의 진상규명 없이, 우리 사회에 온전한 평화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의 사회적 갈등을 치유하기 위해서 평화는 무엇보다도 시급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사순담화 말씀대로, ‘타인을 선물로 바라보는 마음’이 바로 평화입니다. 타인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매우 소중한 보화로서 하느님께서 원하시고 사랑하시고 돌보아 주시는 사람으로 받아들이는 마음이 곧 평화입니다(2016년 사순담화 참조).
그리고 남북관계의 오랜 갈등과 대립 역시 평화의 정신 없이는 결코 해소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히 드러났습니다. 따라서 남북 간의 평화협정은 남북 간의 군사적・정치적 갈등과 적대적인 대립을 해소하고, 자주적인 관계를 이룰 수 있는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남북 간의 평화협정을 위해 정치지도자와 종교지도자 그리고 민간인 모두가 간절한 마음으로 머리를 맞대고 평화의 길을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현재 우리나라의 국제관계는 더없이 위태롭습니다. 왜냐하면 “평화는 전쟁 없는 상태만도 아니요, 적대세력 간의 균형 유지만도 아니며, 전제적 지배의 결과도 아니기”(사목헌장, 78항)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의가 아니라 힘의 논리, 군사적 대결의 논리에 따른 균형으로 평화를 유지하려는 시도가 언급되고 있고, 이러한 시도가 인류의 공동선을 위해 기여한 바가 없고 또 기여할 수도 없다는 것을 우리는 확고하게 믿고 있습니다. “다른 민족들 그리고 그들의 존엄을 존중하려는 확고한 의지와 형제애의 성실한 실천이 평화 건설을 위하여 반드시 필요하다.”(사목헌장, 78항)는 평화의 정신은 특별히 사드 배치와 관련된 주변 강대국과의 국제 관계에서 더욱 긴요하게 여겨집니다.
새로운 나라를 위한 바탕인 평화
우리 시민들이 보여주었던 촛불의 위대한 힘이 평화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처럼, 촛불 민심이 추구하는 새로운 나라는 우리가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확고한 평화의 증인이 될 때, 비로소 시작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는 5월 9일에 있을 대통령 선거는 새로운 나라를 위한 열망을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표명할 수 있는 민주시민의 권리이자 의무입니다(사목헌장, 75항 참조). 우리나라 헌법이 추구하고 있는 가치와 정신에 따라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들이 인간의 존엄성과 품위를 누릴 수 있도록 보장하며, 헌법에 표현된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충분히 표현할 수 있고, 국토의 균형 발전과 모든 지역의 인재들이 차별 없이 국정에 참여할 수 있는 인사탕평책을 시행하며, 남북 간의 화해와 평화공존을 보다 적극적으로 증진시키는 국정 철학과 비전을 가진 그런 대통령을 선출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평화증진을 위한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평화를 위한 길인 십자가와 부활
예수님의 평화는 하느님과의 깊은 일치로부터 비롯되어, 다른 사람들과의 일치를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온 생애 동안 그런 평화를 추구하셨고, 자신 안에서 온전히 평화를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은 왕이 아니라 겸손한 종의 모습으로, 또 부자가 아니라 머리 둘 곳조차 없는 가난한 모습으로 당신이 메시아임을 드러내셨는데, 이것이 바로 십자가”(프란치스코 교황, 2017.3.12.)이며, 이 십자가로서 부활을 이루셨고, 평화의 길을 완수하셨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십자가와 부활로 하느님 나라를 위한 평화의 길이 되신 예수님을 따라나선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평화의 길을 함께 걸을 때, 우리 각자는 하느님과 깊은 일치를 이루고, 타인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가득차게 될 것입니다. 그 길이 또한 세상의 평화를 위한 길이 될 것입니다.
오늘 부활 대축일은 바로 하느님의 질서가 새롭게 이 땅에 선포되는 날입니다. 하느님은 그분을 해방시키시고, 그리고 우리 모두를 해방시키셨습니다. 낡은 세상은 끝나고, 새 세상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마련한 위대한 이 파스카의 역사, 증오와 분열과 온갖 갈등에서 사랑과 화해 그리고 일치와 평화로 부활하는 파스카의 역사를 마련해 주신 하느님께 진정으로 감사를 드리는 날이 되기를 빕니다.
오늘 부활 대축일을 맞아 그리스도께서 주신 이 빛과 평화가 온 누리의 모든 이들과 우리 겨레, 특별히 희망을 잃고 어려움 속에 있는 우리 형제들에게 골고루 비치기를 거듭 기도합니다. 알렐루야!
2017년 4월 16일
천주교 광주대교구 교구장
김희중 히지노 대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