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화문
2016년 교구장 부활메시지
- 작성자 : 관리자
- 등록일 : 2016-03-21
- 조회수 : 1012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우리 희망의 원천입니다(「복음의 기쁨」 275항)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어 수난과 부활의 삶을 보여주시고 그 깊은 신비로 우리에게 새 생명과 평화, 희망을 선물로 주시는 주님 부활을 축하하며, 그 기쁨을 교구민 여러분과 함께 나눕니다.
사람은 누구나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꿈꾸고 희망합니다. 또한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안위와 행복을 보장해주는 세상에서 살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우리의 희망이 아무리 절박해도 이를 실현할 수 있는 공정하고 정의로운 세상이 되지 않으면 성취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거짓 희망을 거슬러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마치 세상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처럼, 고립된 섬처럼 살아가는데 익숙해져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세상은 더 이상 개개인의 삶과 운명에 관심을 갖기보다는 사람을 쓰임새에 따라 그저 하나의 소모품처럼 여기게 되었습니다.
생존경쟁의 늪은 누구도 쉽게 빠져나올 수 없이 깊어만 가고 있습니다. 벼랑 끝에 서 있는 사람들의 처지를 세상은 더 이상 내 삶의 영역으로 간주하지 않으며, 불편한 진실은 아예 외면해 버립니다.
또한 자본세계의 탐욕은 노동세계를 노예의 세계로 전락시킬 만큼 고약해졌고, 그 결과 경제적 불평등은 점점 심화되고 있습니다.
농민들의 삶은 공권력의 부당한 행사에 의해 의식을 잃고 사경을 헤매는 백남기 형제의 처지와 다를 바가 없게 되었다는 우려가 많습니다. 우리나라의 정치는 더 이상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가 아닌 소수의 정치적 이익 집단의 사적 욕망의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지탄이 많습니다. 안타깝게도 남북 간의 오만한 군사적 대결과 끝없는 상호 배척은 한 민족, 한 형제였던 우리의 관계가 더 이상 가까워질 수 없는 경색 국면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또한 주변 강대국들의 패권적인 국제정치의 각축장에서 우리나라의 운명은 마치 거친 풍랑 속의 돛단배처럼 위태로운 처지가 되었습니다.
우리 삶의 세계는 거짓 희망으로 가득 차 있어 건전한 상식과 합리성이 아니라 타인을 배척하는 독선적인 논리와 주장이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힘없고 못 배우고 못 가진 사람들의 삶은 더욱 고단해지고, 인간의 품격은 한없이 격하되고 있습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성은 허약해졌습니다.
우리의 희망이신 예수 그리스도
진정한 희망은 먹고, 마시고, 입는 걱정에 온통 마음과 생각과 힘을 쏟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마태 6,25-34 참조). 그저 자신만의 생존과 안위에 최고의 가치를 두는 세상이 빚어낸 거짓 희망은 인간을 탐욕의 성에 가두어 이웃의 삶과 그들의 절박한 고통스러운 삶을 외면하게 하고, 세상을 무관심의 황량한 사막으로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희망은 과연 무엇입니까? 우리의 희망은 어디로부터 나오는 것입니까? 우리 그리스도인의 희망은 세상이 추구하는 희망과 무엇이 다릅니까?
우리 그리스도인의 희망은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나라를 몸소 보여주신 예수님의 죽음보다 강한 사랑으로부터 나옵니다. 말씀과 행동으로, 심지어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 죽음까지도 아랑곳 하지 않은 채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 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시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루카 4,18)하신 예수님의 헌신이 우리의 희망이고, 우리 부활의 기쁨이며, 하느님 나라의 자비로운 얼굴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모두 ‘희망과 자비의 선교사’입니다
프란치스코 교종께서는 ‘자비의 특별 희년’을 선포하시면서 우리 그리스도인 모두가 “자비를 베푸시는 아버지의 뚜렷한 표지”(「자비의 얼굴」 3항)인 자비의 선교사가 되도록 초대하십니다. 자비의 해는 무엇보다도 “말과 행동으로 가난한 이들을 위로하고, 현대사회의 새로운 노예살이에 얽매인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자신 안에 갇혀 있어 제대로 보지 못하는 이들이 다시 볼 수 있도록 하고, 존엄성을 빼앗긴 모든 이가 다시 그 존엄을 찾도록 하는 것입니다.”(「자비의 얼굴」 16항)
투표는 자비 실천의 한 방법입니다
우리 모두는 “공동선의 증진을 위하여 자유 투표를 할 권리와 동시에 의무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사목헌장」 75항) 특히 2016년 4월에는 우리 사회의 숱한 난제를 풀어 나갈 일꾼들을 뽑는 총선이 있습니다. 투표는 건전한 시민의식을 표명하는 것일 뿐 아니라 자비를 실천하는 한 방법입니다. 이번 총선에서 우리 모두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일꾼, 친환경 생태계 복원과 수호에 적극적인 일꾼, 경제민주화와 사회정의를 올곧게 실천하는 일꾼, 남북 간 교류와 평화를 증진할 일꾼, 패권적인 국제정치 속에서 자주적인 주권을 지켜나갈 수 있는 일꾼이 선택되도록 기도하며 투표에 적극 참여합시다. “책임감 있는 시민의식은 하나의 덕이고, 정치 생활에 대한 참여는 도덕적 의무입니다.”(「복음의 기쁨」 220항) 따라서 투표는 우리의 꿈과 희망이 실현될 수 있는 보다 더 아름다운 세상을 건설해야 하는 그리스도인의 소명이요 자비를 실천하는 일임을 꼭 기억합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기쁨과 희망이 세상 곳곳에 울려 퍼지기를 기원하며, 주님의 부활을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알렐루야!
2016년 3월 27일
천주교 광주대교구
교구장 김희중 대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