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화문
2015년 교구장 부활메시지
- 작성자 : 관리자
- 등록일 : 2015-03-27
- 조회수 : 1247
“여러분도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 속에 나타날 것입니다.”
짙은 어둠을 가르며 새벽을 깨우는 따스한 햇살이 차가운 대지 위에 비추고 있습니다. 세상을 비추는 빛은 어둠의 사슬에 묶여 있던 고통의 침묵을 일깨우며 우리에게 구원의 은혜로 다가왔습니다. 또한 그 빛은 세상의 죽음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건너가는 주님 부활의 파스카였습니다. 부활은 세상의 어둠 때문에 고통받고 병들어 아파하는 가난한 자들에게 삶이 선물이며 은혜임을 깨닫게 해 줍니다. 그래서 그들의 마음 안에 영원한 생명의 충만한 기운이 번져나갑니다. 광명의 빛은 죽음의 고통을 딛고 영원한 생명으로 세상에 부활하시어 우리 안에 현존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이들에게서 기쁨의 환성이 터져 나옵니다. 그리고 이 경이로운 체험의 여정에 주님께서 모든 이들을 초대하십니다. 저 역시 주님의 이 초대에 응한 많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일 뿐입니다. 저도 이 초대에 성실히 응답하기 위해 매순간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 인생의 순례여정에서 누리는 기쁨과 평화를 주님께서 원하시듯 더 많은 이들이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분은 먼저 갈릴래아로 가실 터이니 여러분은 거기에서 그분을 뵙게 될 것입니다.”
갈릴래아는 가난한 이들, 낮은 자들의 땅이었으며, 천대받고 소외된 이들의 땅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권력자들로부터 무시당하는 그러한 갈릴래아 출신임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으셨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사람들의 발을 씻어주심으로써 그들보다 더 낮아지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을 따르는 이들 역시 그렇게 가난하고 천대받는 이들의 발을 씻어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낮추셨을 뿐만 아니라 진정으로 그들과 함께하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당신의 자리인 갈릴래아로 가십니다. 그리고 그곳으로 당신 제자들, 곧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갈릴래아는 주님을 만날 수 있는 자리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기쁨과 평화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소외받는 이들이 머무는 곳에서 그들과 함께할 때 가능하다는 것을 주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십니다.
프란치스코 교종께서는 사순 시기 담화문을 통해 우리 모두 무관심에서 벗어나 이웃에 대한 깊은 애정과 관심을 갖자고 요청하셨습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당신을 낮은 존재로 드러내신 것처럼 우리도 자신을 낮은 자로 인정할 때 가능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자신을 ‘갈릴래아’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결코 주님이 계신 그 ‘갈릴래아’에 머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우월한 존재로 타인을 지배할 수 있는 위치에 있기를 원합니다. 그런 이들은 주님의 사랑의 손길에 자신을 맡길 수도 없을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 낮은 자가 되기를 거부하는 사람에게는 가난하고 무력한 낮은 사람들이 눈에 보이지 않을 뿐더러 그들을 포용할 수 있는 마음이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의 비참한 삶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교종께서는 이런 무관심의 세계에서 벗어나 주님을 만나는 사람이 되기를 촉구하십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어느덧 일 년이 되었습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이 사건을 통해서 우리 삶의 근원적이고도 전반적인 사회의 위기를 재조명하는 기회로, 그리고 이 교훈을 절대 잊지 않기를 이구동성으로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 기억 속에서 잊혀져가고 있는 것 같아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이제 그만 이야기하자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억울한 희생과 아픔이 나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도 주님처럼 우리 자신을 갈릴래아 사람으로 인식합시다. 가난하고 소외되며 고통과 슬픔에 잠겨있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고 한 발 더 다가갑시다. 이들과 함께하려는 마음은 하느님의 사랑에 의탁하고 감사할 때 우리 안에서 커져 갈 것입니다.
“누가 그 돌을 무덤 입구에서 굴려 내 줄까요?”
주님의 무덤을 향해가던 여인들은 무덤을 막고 있는 돌을 어떻게 치울까 걱정합니다. 그러나 무덤 앞에 다다르자 돌이 치워져 있음을 발견하고 놀랍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삶을 가로막는 모든 장벽과 억압을 치울 수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바로 자신을 낮은 자로 여기는 사람입니다. 극단적 이기주의에 젖어 살아가는 이들은 이웃의 어려운 처지에 눈을 돌리지 않습니다.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라고 여겨 낮은 자들의 존재와 삶에 무관심합니다. 반면에 자신을 낮은 자로 여기는 사람은 하느님 사랑에 열려 있고, 이웃의 아픔에도 동참합니다. 또한 그 아픔의 원인에 대처하기 위해 도움의 손길을 내밉니다. 우리도 어려운 이웃들과 연대하여 그들을 짓누르는 돌들을 치우기 위해 함께 힘을 모읍시다.
이웃이라는 개념이 약해진 요즈음, 공동체라는 말이나 더불어 살아가는 삶은 생소한 것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저 ‘내 것’과 ‘내 일’에만 사로잡힌 이기적인 사람들은 함께 연대한다는 것을 생각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 세상은 더욱 삭막해지고 아픔과 외로움이 커져갈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배고픈 군중을 위해 너희가 빵을 나누어주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연대하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면서 그 비밀을 알려주셨습니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처지와 상황에 함께할 수 있는 사람만이 연대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더불어 함께함으로써 누릴 수 있는 기쁨을 발견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 나라의 잔치에는 나 혼자가 아니라 다른 이들과 함께 가야합니다. 너 없는 나는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가 하느님 사랑과 자비를 가장 구체적으로 체험하고 확장할 수 있는 자리는 본당 공동체입니다. 교종께서도 무관심의 바다 한가운데에서 본당공동체가 하느님 자비의 섬이 될 수 있길 기원하셨습니다. 우리 교구는 올해부터 본당의 해를 보내고 있습니다. 하느님 사랑과 자비를 체험한 사람으로서 서로 낮은 자가 되어 이웃의 아픔과 시련에 동참합시다. 그래서 그들을 짓누르고 있는 돌을 함께 치워줍시다. 어느덧 그들의 돌만이 아니라 내 돌도 치워져 있음을 발견하게 되고, 더 큰 기쁨과 더불어 함께하는 부활의 은총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주님의 부활을 축하드립니다!
부활의 기쁨과 은총이 모든 형제자매님들과 함께하길 기원합니다. 또한 여러분들의 가정에도 주님 부활의 기쁨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나아가 본당 공동체에도 부활의 은총이 넘쳐 하느님 나라의 체험이 커져가고 이웃들과도 나눌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주님께서는 오늘의 부활 축제를 통해 우리를 영원한 삶의 기쁨에로 초대하고 계십니다. 또한 그 초대에 응답한 이들을 당신 사랑과 자비로 이끌어 주십니다. 우리 자신을 온전히 주님께 의탁할 때 우리 인생여정을 주님께서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주님 부활의 영광 안에 우리 모두 함께합시다. 알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