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화문
2011년 교구장 성탄메시지
- 작성자 : 관리자
- 등록일 : 2011-12-16
- 조회수 : 1188
주님께서는 참으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오늘은 영원하신 창조주께서 ‘암흑의 땅에서 어둠 속을 걷던 백성에게’ 구원의 빛을 비추신 거룩한 날입니다. 썩지 않으실 분이 썩을 육신이 되시어 우리와 하나가 되셨습니다. 그래서 하늘이 땅이 되고, 땅이 하늘이 되기 시작한 고맙고 은혜로운 날입니다. 하느님은 온갖 금은보화가 가득한 부자나 막강한 권력을 지닌 황제로 위풍당당하게 오신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분은 가난한 집안의 평범하고 여린 아기로 오셨습니다. 그것은 가난하고 약한 사람이 천대받고 억눌려 살아온 세상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어떠한 차별도 받지 않고 하느님의 자녀로서 소중하게 사랑받는 새로운 세상이 되게 하시려고 "평화의 군왕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절망이 희망으로 채워진 날이며, ‘하늘에서는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땅에서는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참 평화가’ 시작된 기쁜 날입니다. 이 뜻 깊은 구세주의 성탄을 맞이하여 아기 예수님의 사랑과 평화가 온 누리와 여러분 가정에 가득하기를 빌며 여러분 모두에게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이 성탄의 기쁨과 축하를 마음껏 나눌 수 있는 우리들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이런 기쁨을 누릴 수 없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출산의 진통 속에도 숙소를 찾아 헤매다 결국 마구간에서 아기 예수를 낳아 구유에 눕힐 수밖에 없었던 성모 마리아와 요셉처럼 집이 없어 헤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며칠 전 난방비가 없어 이동용 부탄가스로 추위를 견디던 집에서 가스가 폭발해 지체장애를 앓고 있던 어린 손자가 목숨을 잃은 사건을 접하며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우리 주위에는 어떤 위안과 격려조차 없이 우리의 따뜻한 손길을 기다리며 외로움과 깊은 상처 속에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런데 이웃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 짊어지려는 따뜻한 마음이 점점 줄어들어 사람들의 마음이 겨울바람보다 더 매서워진 듯해 안타까울 뿐입니다. 더구나 최근에는 실의와 좌절에 잠겨있거나 원망과 미움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것 같아 더욱 걱정됩니다. 젊은 나이에 직장을 잃거나 취업조차 하지 못한 사람들이 늘어 생계에 대한 걱정과 불안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많은 젊은이들이 이러한 현실 속에서 삶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일부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어린 학생들까지도 생명의 가치와 존엄을 포기하며 자살까지 선택하는 사회분위기가 확산되고 있어 시급한 사회적 대책이 필요합니다. 이런 생명문화의 퇴보와 물질주의, 극단적인 이기주의가 만연하게 된 원인으로 여러 가지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근본적인 원인이 가정의 붕괴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가진 것이 없어 어렵게 살더라도 서로의 어려움을 나누며 상처를 어루만져 주고 위로해주는 포근한 가정이 있다면 미움과 분노에 사로잡히거나 삶을 포기하는 극단적인 선택을 결코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 가정의 소중함이 훼손되고 가정의 역할이 올바로 실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로인해 인격적으로 완성된 사회 구성원이 사회로 배출될 수 없게 된 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따라서 가정이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는 것이야말로 모든 희망의 첫 단추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2012년 교구 설정 75주년을 기점으로 100주년을 향해 새롭게 출발하면서 “가정”을 첫 주제로 삼아 3년 계획으로 사목교서를 발표하였습니다. 가정은 하느님 사랑의 신비, 곧 성탄의 신비가 그 어느 곳보다 가장 구체적으로 실현되어져야 할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모든 인간이 참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그 기반을 배우고 인격을 키우는 학교이기 때문입니다. 가정의 첫 출발은 부부애로부터 시작되고 부부 상호간의 완전한 자기봉헌을 통해 일치가 실현됩니다. 그리고 혼인을 통해 주어지는 하느님의 최고의 선물인 출산을 통해 인간은 하느님의 창조사업에 동참하게 됩니다. 하느님 대리인으로서의 사명을 자각하는 부모들은 자녀들을 존중하고 사랑으로 가르침으로써 하느님 창조사업의 영역이 확장되게 합니다. 사랑의 사명을 충실히 수행하는 부모와 함께하며 성장한 자녀는 하느님 창조사업의 협력자로서 이 세상에 참 생명과 평화가 넘치도록 활동하게 될 것입니다. 바로 성탄의 신비가 가정을 통해 실현되고 확장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에 참다운 생명과 평화가 가정으로부터 출발하여 실현되고 확장되길 바라십니다. 그래서 당신께서 직접 가정을 선택하시어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성탄의 신비는 하느님께서 우리의 처지에 당신을 맞추셨던 것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함께하는 가족들과 이 사회의 상처받은 모든 이들 곁에 자신을 맞추어 머물 때 체험되고 완성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머무는 자리는 참 생명과 평화가 넘치게 될 것입니다. 아기 예수님이 보여준 가난과 비움,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뜻을 따라 십자가 위에서 마지막으로 보여주신 희생의 깊은 뜻을 깨닫고 남을 위해 자신을 낮추고 비우는 것이 나와 가정과 세상을 구원하는 삶임을 고백합시다. 그래서 소외받고 절망하는 이들, 장애인, 이주민들이 성모 마리아와 요셉처럼 들어갈 자리가 없어 헤매는 일이 없도록 우리가 그 자리를 마련해주는 사랑과 너그러움을 실천합시다. 예수님 성탄의 기쁨이 우리만이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이들의 것이 될 수 있도록 합시다.
사랑의 완전함을 우리 안에서 실현하신 이 경이로운 성탄의 신비가 교우 여러분들의 가정 안에 가득하길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2011년 12월 25일
천주교 광주대교구 교구장 김희중 대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