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화문
2009년 성탄 메시지
- 작성자 : 관리자
- 등록일 : 2009-12-25
- 조회수 : 1103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요한 1,14).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그리고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여러분,
우리를 위하여 또 우리 때문에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축복이 이 성탄과 새해에 가득하시길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매년 2000여 년 전에 사람이 되시어 이 세상에 오신 하느님의 탄생을 경축합니다. 우리가 어떤 날을 기념하고 축제를 지내는 이유는, 어떤 사실이나 사건의 의미를 되새기고 잊지 않음으로써 서로의 친교와 유대를 강화하고 화합과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의 성탄축제는, 참 삶의 빛이요 길이신 예수님의 사랑으로 온 인류를 초대하여 용서와 자유를 얻게 함으로써, 새 희망으로 인류의 화합과 평화를 축원하는 것입니다.
1. 예수님의 성탄은 죽음의 문화 속에 사로 잡혀 있는 인류에게 참 생명과 빛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 ‘하느님이 사람이 되셨다’는 것은 하느님이 ‘하느님’이시기를 포기하고 죽을 인생을 선택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성탄은 신화(神話)에 불과할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의 이 놀라운 계획을 이렇게 탄복합니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필리 2,6-7). 이는 이사야 예언서에 이미 암시되어 있으며(63,7-8; 25,6-10 참조), 히브리서 저자 역시 “만물은 하느님을 위하여 또 그분을 통하여 존재합니다. 이러한 하느님께서 많은 자녀들을 영광으로 이끌어 들이시면서, 그들을 위한 구원의 영도자를 고난으로 완전하게 만드신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을 거룩하게 해 주시는 분이나 거룩하게 되는 사람들이나 모두 한 분에게서 나왔습니다. 그러한 까닭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형제라고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저는 당신 이름을 제 형제들에게 전하고 모임 한 가운데서 당신을 찬양하오리다.’”(히브 2,10-12) 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창조주 하느님께서 피조물과 ‘눈높이 사랑’을 하고자 하십니다. 달리 말하면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신 나머지 우리와 같은 처지에 내려오시어, “죄를 모르시는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만드시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되게 하셨습니다”(2코린 5,21). 우리는 감히 하느님의 동기(同氣)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 그러나 세상은 하느님의 이 ‘눈높이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마치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된 인간이 자기 본 모습을 거부하였듯이(창세 1,26-27; 2,7; 2,15-17; 3,1-6 참조) 말입니다. 요한복음서는 이렇게 증언합니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요한 1,4-5). 죽음의 문화, 불의와 부정이 지배하는 사회, 어둠이 드리워진 인류사회는 밝은 빛을 피하게 마련입니다. 어둠이 깔린 세상에 빛으로 오시는 구세주의 탄생을 거부하는 세상의 모습을 복음서는 이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 내가 너에게 일러 줄 때까지 거기에 있어라. 헤로데가 아기를 찾아 없애 버리려고 한다. … 그때에 헤로데는 박사들에게 속은 것을 알고 크게 화를 내었다. 그리고 사람들을 보내어, 박사들에게서 정확히 알아낸 시간을 기준으로, 베들레헴과 그 온 일대에 사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마태 2,13-16). 예수님께서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요한 8,12) 라고 천명하셨지만, 거짓말쟁이며 거짓의 아비인 악마의 하수인들은 그분을 죽이려고 합니다(창세 3,1-6; 요한 8,37-59 참조).
● 그렇지만 어둠의 세력은 결코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 구약의 현자들 역시 “밤은 빛을 밀어내지만 악은 지혜를 이겨내지 못한다. 지혜는 세상 끝에서 끝까지 힘차게 퍼져 나가며 만물을 훌륭히 통솔한다.”(지혜 7,30-8,1)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결코 당신 작품(에페 2,10 참조)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요한 3,16-17) 것입니다. 결국 ‘하느님이 사람이 되셨다’는 이 놀라운 역사적 사건은 곧 ‘사람’이 하느님께 나아가는 ‘통로’이며 ‘하느님을 만나는 현장’임을 깨닫게 합니다(요한 14,6 참조).
2. 구세주의 성탄은 사람들의 예측을 초월하는 신비로운 계시입니다.
● 예수 성탄을 복음서는 다음과 같이 증언합니다. “그들이 거기에 머무르는 동안 마리아는 해산 날이 되어, 첫아들을 낳았다. 그들은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뉘었다.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루카 2,6-7). 세상은 구세주를 맞이할 자리를 마련하지 않았습니다. 강생하신 구세주는 사람들 가운데 오셨지만, 그분을 받아 주는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오늘도 현실에만 집착하여 권력과 재력에 삶을 의존하는 사람들은 구세주 성탄의 신비를 알아보지도 못하고 알아보려고 노력하지도 않습니다. 구세주 성탄을 맨 먼저 맞아들인 사람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며 자기 삶에 충실했던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고장에는 들에 살면서 밤에도 양 떼를 지키는 목자들이 있었다. … 천사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 너희는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있는 아기를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너희를 위한 표징이다.’ … 천사들이 하늘로 떠나가자 목자들은 서로 말하였다.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알려 주신 그 일, 그곳에서 일어난 일을 봅시다.’ 그들은 서둘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운 아기를 찾아냈다”(루카 2,8-16).
● 사람이 되신 말씀 곧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루카 10,21). 스스로 지혜롭고 슬기롭다고 자만하면서 자신의 계획과 능력만을 신뢰하며 오늘의 성공과 미래의 행복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구세주의 성탄 신비는 감추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구세주의 성탄은 인간의 상상과 예측을 뛰어넘는 하느님의 놀라운 구원계획이며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보지 못하는 이들은 보고, 보는 이들은 눈먼 자가 되게”(요한 9,39) 합니다(이사 61,1-3; 29,17-20; 30,18-22; 마태 11,2-6 참조). “이 세상 우두머리들은 아무도 그 지혜를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이 깨달았더라면 영광의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을 것입니다”(1코린 2,8).
● 세상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오늘도 구세주의 성탄을 기념하고 경축합니다. 2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빛과 어둠의 갈등은 지속되고 있습니다. 죽음의 문화가 지배하고 있는 세상이 예나 지금이나 빛을 거부하고 빛을 가리며 기득권을 확고히 유지하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역사적 현실 앞에서 빛의 자녀로서 살려면 진실하고 진리의 빛 아래 걸어야 합니다. 사람이 되신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간곡히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이는 영생을 얻고 심판을 받지 않는다”(요한 5,24). 어둠의 세력을 극복하고 죽음의 문화를 벗어나려면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경청해야 합니다. 저 2000년 전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이 세상에 오실 때처럼.
3. 그리스도인은 성모 마리아를 본받음으로써 확실한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 하느님 말씀이 사람이 되신 경위를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1-38). 이 순간에 영원하신 말씀은 우리와 같은 인간이 되시고, 말씀을 잉태하신 분은 구세주의 모친이 되십니다. 이 모친은 당신이 낳은 말씀 곧 예수와 평생을 함께 하며 구세주의 세상 구원을 위한 길에 동참하십니다. 이 구원의 역사를 마르코 복음서는 이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셨다. 그리고 당신 주위에 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르 3,33-35). 하느님 말씀을 지닌 이 구원의 모자(母子)는 “아버지, …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마태 26,39) 하신 외아드님과 함께 자신을 바치시며, 아버지의 뜻을 완성하심으로써(요한 19,25-30 참조)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를 이루고 동시에 어머니가 되셨습니다.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그리고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여러분,
우리는 구세주 예수님을 통해서 감히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되었으며 그분의 지체가 되었습니다(로마 8,9-15; 콜로 1,15-20 참조).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나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마태 6,10) 라고 기도하며 매사에 하느님의 뜻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바로 여기에 성탄을 기념하고 경축하는 참 의미가 있습니다. 어두운 세상을 탓하지 말고 어두운 세상을 볼 수 있는 눈, 곧 양심을 지닐 수 있음에 감사하며 인간으로 오신 구세주께서 사신 길을 깊이 묵상합시다. 하느님의 옛 백성들이 기대하고 희망하듯 구세주는 위엄을 갖추고 힘으로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리러 오시지 않습니다. ‘사람이 되신 하느님’은 사람의 돌봄을 필요로 하는 갓난아기로 태어나시어 ‘눈높이 사랑’의 표징이 되시고, 생명을 키우는 그릇인 구유에 누우시어 ‘밥’의 표징이 되셨습니다. ‘사람이 되신 하느님’은 실제 성부의 뜻에 따라 십자가에서 돌아가시어 묻히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이 표징의 의미를 더욱 분명하게 드러내셨습니다. 그리고 이 ‘인간의 여정’을 교회가 영원히 기념하도록 신앙의 유산인 성체성사를 남기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신비체인 교회는 성체성사로 형성되고 연명하며 살아갑니다(교황 요한바오로 2세). 그래서 구세주의 성탄을 기념하고 경축하는 오늘, 우리 교회는 세 대의 미사를(밤미사, 목동미사, 낮미사) 봉헌합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하느님의 이 놀라운 구세사가 축복이 되고 희망이 되며 참 삶의 길로 초대되는 기회가 되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은 생명의 빛입니다.”
2009년 성탄절에
천주교 광주대교구
교구장 최 창 무 안드레아 대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