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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화문

2008년 성탄 메시지

  • 작성자 :  관리자
  • 등록일 :  2009-04-10
  • 조회수 :  1091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14)

 

 

 

  친애하는 교형자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 여러분과 여러분 가정, 그리고 이 세상에 새로운 희망과 빛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탄생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창조의 말씀이며 구원의 말씀이십니다. 바로 그분이 우리와 같은 처지로 내려오시어 우리를 구원의 길로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이 사실은 이미 이사야 예언자에 의하여 희망의 메시지로 천명되었습니다. “모든 곤경가운데 그들에게 구원자가 되어 주셨다. 사자나 천사가 아니라 그분의 얼굴이 그들을 구해 내셨다. 당신의 사랑과 당신의 동정으로 그들을 구원해 주셨다. 지난 세월 모든 날에 그들을 들어 업어 주셨다.”(이사63,8-9). 이는 우리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말씀입니다. 하느님은 기적으로 우리의 고통을 없애주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처지를 당신의 것으로 삼으시어 우리가 우리의 처지를 구원의 길, 영생의 길로 삼으라고 희망을 주시고 본보기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이 강생의 신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해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을 알고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부유하시면서도 가난하게 되시어, 여러분이 그 가난으로 부유하게 되도록 하셨습니다.”(2코린 8,9). 그러므로 우리의 현세 고통과 가난은 강생하신 예수님의 빛과 도움으로 인하여 축복의 길로 바꾸어야 할 통로가 된 것입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니”(마태 5,3)라고 하신 행복선언의 참 뜻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2008년은 온 세상이 경제문제로 걱정과 위기감에 사로잡힌 한 해였습니다. 각종 경제 분석들은 유사 이래 가장 큰 경제공황이 닥칠지 모른다는 전망들을 늘어놓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위기의 진원지가 가난한 나라들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부유하고 힘이 있다는 경제대국 미국과 유럽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사실과 그 위기의 원인이 이들 경제 대국들의 신용경색과 국가 감독 미흡에서 비롯되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우리에게 돈이나 권력이 잘못되면 온 세상을 불행의 구렁텅이에 빠져들게 한다는 것과 부와 권력이 인간에게 행복의 샘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줍니다.

 

 

 

  또한 오늘날의 사회는 책임감과 연대의식이 부족하여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인간의 연대성과 공통성, 갈등과 책임회피는 천재(天災)와 인재(人災)를 당하는 상황에서 잘 드러납니다. 천재로 인한 피해(지진, 쓰나미, 화산폭발, 태풍 등)를 당하면 민족과 국가를 초월한 동정심과 협동심이 발휘되거나 돕지 못해 미안해하고 안타까워하게 됩니다. 그러나 인재로 인한 불상사(무차별 살인, 비행기 납치, 건물폭파, 다량 인질극 등)를 당하면 경악과 공포, 분노와 원한의 감정을 표출하고 동시에 원인규명, 책임소재 판단, 보상 문제 등으로 피해 당사자는 물론 사회에 큰 상처를 남기고 불신과 자기 보호본능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런데 현대에 와서는 인간 능력의 극대화로 개인들이 파괴나 손해를 입히고자 하는 직접의도가 없는데도 기워 갚기 어려울 정도의 큰 피해가 자주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책임감의 결여, 연대의식의 부족, 이웃에 대한 배려와 섬김의 정신 부족에서 생기는 경우입니다.(유조선에서 기름 유출, 산업재해, 체르노빌 원자로 폭발, 환경 파괴적 개발, 세계적 경제위기를 조장한 금융계의 무책임과 정부의 방관 등) 이 경우들의 폐해는 불특정다수에게 고통을 안길 뿐만 아니라 환경·생태·경제질서의 파괴로 나타나고, 기획 경제나 생활 계획을 불가능하게 하며 미래에 대한 불안에 빠져들게 합니다.

 


  우리 사회가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교회는 다시 한 번 인간을 그리고 인류 공동체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뜻을 밝히면서, 고난의 길을 구원과 생명의 길로 바꾸고자 하였습니다. 산업혁명으로 인간 사회가 큰 격변기를 겪고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대결하고 있을 때 레오 13세 교황님은 회칙 “새로운 사태”를 통해 좌(左)도 우(右)도 아닌, 인권의 존엄과 불가침성 그리고 국가 권력의 중립과 감독을 통한 사회 안정의 길을 제시하셨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국제 경제 공황기에 비오 11세 교황님은 회칙 “40주년”을 통해 경제 정의를 강조하셨으며, 제2차 세계대전 후 미․소 양 세력의 냉전 체제 속에서 요한 23세 교황님은 회칙 “지상의 평화”를 통해, 바오로 6세 교황님은 회칙 “민족들의 발전”을 통해 평화 공존을 강조하시고 신자유주의, 자유자본주의를 경계하며 인류의 진정한 발전과 평화를 위한 사회정의, 분배정의를 가르쳐 주셨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는 회칙 “백주년”을 통해 새로운 천년으로의 도약과 길을 제시하셨습니다.

 


   우리 교회는 제3의 새로운 길을 제창하지 않습니다. 다양성 안에 일치와 생명과 인격의 존엄성을 지키는 “생명의 복음”(요한 바오로 2세),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베네딕토 16세)로 인간의 위대함과 연약함을 헤아려, 나쁜 것을 버리고 좋은 것을 취해 발전토록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하느님을 닮은 인간의 길이며 구원자 하느님께서 인도해 주시는 생명의 길입니다. “너희가 이 말을 배척하고 억압과 탈선을 믿어 그것에 의지하니 이 죄는 너희에게 점점 부풀어 올랐다가 떨어지는, 갑자기 일순간에 부서져 내리는 높은 성벽의 돌담과 같으리라.”(이사 30, 12-13. 창세 2, 15-17 참조) 하시며 구원의 길을 제시하십니다. “네가 부르짖으면 그 분께서 반드시 너희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들으시는 대로 너희에게 응답하시리라. 비록 주님께서 너희에게 곤경의 빵과 고난의 물을 주시지만 너희 스승이신 그분께서는 더 이상 숨어 계시지 않으리니 너희 눈이 너희의 스승을 뵙게 되리라. 그리고 너희가 오른쪽으로 돌 거나 왼쪽으로 돌 때 뒤에서 ‘이것이 바른 길이니 이리로 가거라’ 하시는 말씀을 너희 귀로 듣게 되리라.”(이사 30, 19-21).

 


  우리는 오늘의 현실을 좌시해서는 안 되며, 반드시 난국을 극복하고자 하는 책임의식을 자각할 때입니다. 우리가 민주주의를 신봉하며 우리의 대표를 뽑아 세웠으니 오늘의 현실에 대한 공동책임이 있습니다. 우리가 깨어 오늘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노력한다면 내일에 새로운 기회가 주어질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추궁하기 전에 세상의 불의와 불공정이 인간의 물욕(物慾)과 권력욕(權力慾)에서 비롯되었음을 인정하고, 이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현재 난국을 극복하고 바른 질서를 회복하려면 다음의 세 가지를 유념하여 각자 스스로 그리고 다함께 연대하여 협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마음의 질서 회복입니다.

개인들의 욕망이 무질서를 가져오고 무질서는 자신과 이웃을 파괴하고 반생명적 질서 곧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사람이 저마다 자기 욕망에 사로잡혀 꼬임에 넘어가는 바람에 유혹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욕망은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다 자라면 죽음을 낳습니다.”(야고 1, 15). 우리는 욕망을 다스려 생명의 문화를 일으켜야 합니다. 생명의 문화는 봉사, 친교, 연대의식, 상부상조로 이루어지고 커 갑니다.

 


둘째, 정의의 실천입니다.

정의가 없으면 평화가 없고 평화가 없으면 진정한 행복도 발전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정의의 기초는 개인의 생명과 인격 존중에서 시작됩니다. 정의는 유엔이 선언한 인권에 기초하여 인간의 존엄을 생명의 시작부터 자연사(自然死)에 이르기까지 존중하고 각자의 자유와 평등이 보장되며 상호간의 존중과 협력 안에서 공동선을 추구하고 기회균등, 재화의 배분정의가 확립될 때 가능합니다. 미카 예언자는 이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천명하고 계십니다. “사람아 무엇이 착한 일이고 주님께서 너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그분께서 너에게 이미 말씀하셨다. 공정을 실천하고 신의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느님과 함께 걷는 것이 아니냐?”(미카 6, 8).

 


셋째, 창조질서와 구원질서 회복입니다.

이 둘은 하나입니다. 왜냐하면 창조주께서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고 이 말씀이 강생하여 사람이 되시고 세상을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는 자연법을 소중하게 깨닫고 지키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따라 사는 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요한 3, 16-17)

 


 

  성탄은 바로 이 하느님의 외아들, 우리의 구세주의 탄생을 경축하는 축제입니다. 지금 온 세상이 실의에 빠져 어두운 미래를 바라보고 있을 때, 인류의 빛으로 오신 구세주를 영접하고 그 분 안에서 구원의 길을 발견해야 하겠습니다. 하느님께 대한 인간의 불순명은 죄와 죽음을 가져왔으나, 순종을 통하여 자유와 생명을 얻게 된 사실을 알며 경축하는 축제가 되어야 하겠습니다.(로마 5, 12-21; 창세 2, 15; 3, 15 참조). 이제 우리는 바오로 사도의 훈계를 경청해야 하겠습니다. “하느님의 자비에 힘입어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드려야 하는 합당한 예배입니다. 여러분은 현세에 동화되지 말고 정신을 새롭게 하여 여러분 자신이 변화되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 분별할 수 있게 하십시오.”(로마 12, 1-2). 바로 이런 마음가짐이 당신을 온전히 내어주시며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사람이 되어 오시는 구세주의 탄생을 경축하는 의의이며, 우리에게 오시는 구세주께로 마중 나가서 드릴 수 있는 바른 예물이 될 것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사람이 되신 하느님 예수 아기께 경배와 찬양을 드립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탄생하신 구세주 예수님의 사랑과 축복이 충만 하기를 빌며 그분의 사랑과 겸손을 본받는 성탄절과 새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2008년 성탄절에

 

 

 

        

                       천주교 광주대교구

 


                                  교구장 최 창 무 안드레아 대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