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화문
2007년 성탄메시지
- 작성자 : 관리자
- 등록일 : 2009-04-10
- 조회수 : 955
세상의 어둠 속에서 빛나는 별이 되어
주님 안에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운 아기’(루카 2,16)로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광명과 평화가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충만하시기를 빕니다. 또한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빛’(요한 1,9)으로 세상에 오신 하느님을 찬양하면서, 그 기쁨과 평화를 이웃 및 지역사회와 함께 나눕시다.
우리는 올해에도 어김없이 그리스도의 성탄을 기념합니다. 묵은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시기와 맞물려 있는 성탄은 ‘큰 빛’(이사 9,1)을 맞이하는 기쁨과 함께 지나온 날들을 되돌아보는 성찰의 시기이며, 새롭게 맞이할 날들에 대한 기대가 넘쳐 나는 시기입니다. “누가 그대를 남다르게 보아 줍니까? 그대가 가진 것 가운데에서 받지 않은 것이 어디 있습니까? 모두 받은 것이라면 왜 받지 않은 것인 양 자랑합니까?”(1코린 4,7) 라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은 지나온 날들을 성찰하는 우리 내면의 울림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금년에 이룬 성과, 받아 누린 것들은 우리에게 당연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적어도 그리스도 신앙인들은 자신이 가진 것들과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것들 그리고 누리고 있는 여건이 하느님의 섭리와 은총 안에서 주어진 선물이요 과제임을 고백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신앙인의 성찰은 감사와 기쁨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습니다. 동시에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는 힘으로, 우리가 청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보다 훨씬 더 풍성히 이루어 주실 수 있는 분”(에페 3,20)이십니다. 하느님께 대한 우리의 이 믿음은 새롭게 맞이할 날들에 대한 우리의 희망을 북돋워줍니다.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우리가 청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 그 이상으로 베풀어주시는 분이시기에(마태 7,7-11 참조),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는 방법은 우리의 내일을 그분의 계획에 내어 맡기는 것입니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몸소 마련한 계획을 분명히 알고 있다. 주님의 말씀이다. 그것은 평화를 위한 계획이지 재앙을 위한 계획이 아니므로, 나는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고자 한다. 그러니 너희가 나를 부르며 다가와 나에게 기도하면 너희 기도를 들어 주겠다.”(예레 29,11-12) 결국 새로운 날들에 대한 기대는 하느님께 대한 굳센 믿음과 헌신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습니다.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루카 2,10) 그리스도 탄생의 기쁜 소식은 2000여 년 전 어느 날 밤에, 주님의 천사가 밤에도 양떼를 지키고 있던 목자들에게 다가와 가장 먼저 전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별’(마태 2,2)은 밤하늘의 별을 헤아리며 ‘유다인들의 임금’을 기다렸던 동방박사들을 앞서가며 ‘영원한 임금이시며 불사불멸하시고 눈에 보이지 않으시며 한 분뿐이신 하느님’(1티모 1,17)께서 사람이 되어 오신 곳으로 인도하였습니다. 기쁜 소식은 목자들처럼 어둠 속에서도 깨어있는 이들에게 먼저 전해집니다. 어둠 속에서도 깨어있는 이들은 밤하늘의 총총한 별들과 같습니다. 별들은 한밤중에 더욱 더 빛을 발하며, 머리를 들고 밤하늘의 총총한 별들을 헤아릴 줄 아는 이들을 ‘큰 빛’으로 인도합니다.
“부드러운 정적이 만물을 뒤덮고 시간은 흘러 한밤중이 되었을 때, 당신의 전능한 말씀이
하늘의 왕좌에서 사나운 전사처럼 멸망의 땅 한가운데로 뛰어내렸습니다.”(지혜 18,14-15)
우리의 세상은 빛과 어둠이 언제나 공존해 왔습니다. 해와 달과 별이 공존하면서 낮과 밤을 이루며 자신을 드러내듯이 선과 악, 진리와 거짓, 정의와 불의, 공동선과 사리사욕, 신앙과 오만 등 상반되는 빛과 어둠의 현실이 언제나 우리와 공존합니다. 우리는 상반된 현실에서 끊임없이 선택과 헌신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어둠을 거슬러 빛을 향한 우리의 선택과 헌신은 곧 우리의 신앙이고 희망이며 사랑입니다. 한밤중에 그리스도 탄생의 기쁜 소식이 밤하늘의 총총한 별과 같은 목자들에게 먼저 전해졌듯이, 하느님께서는 세상의 어둠속에서 ‘뽑아 세운’(요한 15,16) 우리들에게 세상에 하느님 나라를 일구는 사명을 맡기십니다. ‘그분의 별’이 앞서가며 동방박사들을 ‘세상의 빛’(요한 8,12)으로 인도하였듯이,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루카 11,28)의 헌신이야말로 세상을 하느님의 나라로 인도하고 완성해 갈 것입니다. 밤하늘의 별이 ‘주님의 드높은 처소에서 빛나는 장식’(집회 43,9) 이라면, 우리는 세상의 어둠속에서 그리스도의 빛을 발하는 주님의 ‘등불’(마태 5,14-16 참조)입니다.
주님 안에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사람이 되신 말씀, 그리스도의 탄생은 머리를 들고 밤하늘의 별을 헤아리던 동방박사들에게는 더 없이 기쁜 소식이었으나, 세상의 권세와 재물과 성공을 재던 헤로데 임금에게는 크게 두려운 소식이었습니다.(마태 2,1-18 참조) 예나 지금이나 이 세상 모든 이들이 사람이 되신 말씀, 그리스도를 알아보고 그분을 받아들이는 것은 아닙니다. 더군다나 ‘빛의 자녀’(1테살 5,5)인 그리스도인들마저 세상의 권세와 재물과 성공만을 추구하며 세상의 현란한 네온사인 불빛에 눈이 멀어 있다면, 사람이 되신 말씀, 그리스도의 빛은 가려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세상도, 또 세상 안에 있는 것들도 사랑하지 마십시오. 누가 세상을 사랑하면, 그 사람 안에는 아버지 사랑이 없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 곧 육의 욕망과 눈의 욕망과 살림살이에 대한 자만은 아버지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온 것입니다. 세상은 지나가고 세상의 욕망도 지나갑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습니다.”(1요한 2,15-17)
교구장 사목교서를 통해 말씀드렸듯이, 사람이 되신 말씀, 그리스도의 탄생은 세상 모든 이를 그리스도 안에 신비스럽게 한데 모으고자 하신 하느님의 계획이며, 그리스도를 통해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시려는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이 계획과 사랑을 찬양하며,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꾸준히’(2티모 4,2)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의 노력은 세상의 어두움 속에서 총총히 빛나는 별이 되어, 하느님의 계획안에서 제 별자리를 만들고, 하느님 사랑의 은하수를 이루어 세상을 하느님 나라로 인도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금년, 국정의 책임자인 대통령을 선출하기 위해 후보자들에 대한 호감과 지지여부에 따라 이편, 저편 갈라져 여러 주장들을 펼치며 혼란스럽고 어려운 과정을 걸어 왔습니다. 후보자들은 정책 대결보다 상대방의 잘못과 부족함을 지적하고 고발하여 우리는 합당한 후보자를 갖지 못한 불행한 국민 같은 느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혼탁한 가운데서도 우리는 차선책으로 국민의 의무를 다하기 위하여 절차에 따라 신중한 선택을 했고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하였습니다. 이제는 지지와 선택여부를 떠나 당선된 ‘우리의 대통령’이 국민의 안녕과 복지를 위하고, 국민의 열망을 겸허하게 받아들여 공동선을 추구하는 정책을 실천하기 바라며 협력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남북으로 갈라진 이 민족이 화해와 일치를 지향하고, 하느님께서 ‘우리의 대통령’을 한반도 평화의 일꾼으로, 민심을 천심으로 여기는 충실한 봉사자로 인도하여 주시길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합시다.
주님 안에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빛’으로 이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께서 지니셨던 마음, “서로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고, 저마다 자기 것만 돌보지 않고 남의 것도 돌보아 주는”(필리 2,3-5) 겸손한 마음을 우리 안에 간직합시다. 이 마음을 간직한 이들에게 사람이 되신 말씀, 그리스도의 탄생은 기쁜 소식이며 영광입니다. “비뚤어지고 뒤틀린 이 세대에서 허물없는 사람, 순결한 사람, 하느님의 흠 없는 자녀가 되어 이 세상에서 별처럼 빛날 수 있도록 하십시오.”(필리 2,15) 라고 당부하신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새기며, 참 빛으로 우리에게 오신 구세주 예수님의 성탄을 경축합시다. 세상의 어둠이 아무리 짙어도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빛을 가로막지 못할 것입니다.(요한 1,4-14 참조) 가난한 아기의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오신 사랑과 평화의 구세주께서 우리와 세상에 기쁨의 빛으로 밝혀지기를 축원합니다.
2007년 12월 25일. 예수 성탄 대축일에
천주교 광주 대교구
교구장 최 창 무 안드레아 대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