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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화문

2004년 부활메시지

  • 작성자 :  관리자
  • 등록일 :  2009-04-10
  • 조회수 :  617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어둠과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의 부활을 축하하며, 그분만이 주실 수 있는 참 평화와 기쁨이 그분을 믿는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

 

우리 구세주 예수께서는 죄스런 세상과 죄인인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십자가에서 희생 제물로 돌아가셨으며 우리의 영원한 삶을 위하여 부활하셨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어 우리와 같은 인간이 되시고 죄 외에는 우리와 똑같은 삶을 사시고 우리와 영원히 함께 사시기 위하여 돌아가시고 부활하셨습니다(1고린 15,12-34). 그분은 이제 우리를 당신 몸의 지체가 되게 하시고 우리와 한몸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대사제이며 머리로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시고, 우리 안에서 기도하시며, 우리의 하느님으로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그러니 우리도 그분 안에서 기도하고, 우리 안에서 그분의 기도소리를 들으며, 그분께 정성 들여 기도 드려야 하겠습니다(성 아우구스티노의 시편 85 주해 참조).

구원될 우리 현실을 한 번 돌아봅시다. 생명 경시 풍조와 온갖 비리, 부정과 부패, 증오와 폭력이 난무하는, 그야 말로 어둠과 죽음의 문화가 지배하고 있는 세상입니다. 어느 때보다 부활에 대한 의미를 소중하게 느껴야 할 때입니다.

 

기술 문명이 발달되고 생활이 풍요로워졌다고 하겠으나, “가치질서가 뒤집히고 선과 악이 뒤섞여, 사람들은 개인이든 집단이든 오로지 자기 것만을 헤아리고 남들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때문에 세상은 이미 참된 형제애의 자리가 되지 못하고, 인류의 증대된 힘은 벌써 인류 자체를 파괴할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사목헌장 37). 이러한 현실 속에서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은 희생을 강요당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바로 이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당신의 처지로 삼으시고 그들의 고통과 희생을 구원의 능력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그분께서는 모욕을 당하시면서도 모욕으로 갚지 않으시고 고통을 당하시면서도 위협하지 않으시고 의롭게 심판하시는 분께 당신 자신을 맡기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죄를 당신의 몸에 친히 지시고 십자나무에 달리시어 죄와 관련해서는 죽은 몸이 된 우리가 의로움을 위하여 살도록 해 주셨습니다. 그분의 상처로 여러분은 병이 낫게 되었습니다”(1베드 2,23-24).

 

우리의 파스카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시어 우리의 어둠과 죽음은 소멸되었고 우리는 살게 되었습니다(1고린 5,7참조). 우리는 기뻐하며 감사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매일의 삶 속에서, 그리고 전례안에서 그분의 신비체로 그분의 삶을 닮으며 살아갑시다. 그리스도께서는 미사의 희생제사 안에 현존하시며 당신의 말씀과 그리스도 공동체 안에 현존하십니다(전례헌장 7). 

 

“하느님께서는 구세주이시며 일치와 평화의 원천이신 예수를 신봉하는 사람들을 한데 불러모아 교회를 세우심으로써 모든 사람과 각 사람을 위하여 구원을 이룩하는 일치의 볼 수 있는 성사 역할을 하게 하셨습니다”(교회헌장 9). 이 신비와 사명은 중대한 일만이 아니라 먼저 일상 생활 환경에서 힘써 실천해야 합니다. 우리 모든 죄인들을 위하여 죽음을 겪으시며 당신 표양으로 평화와 정의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어깨에 육신과 세상이 지워주는 십자가도 져야 한다는 것을 아는 우리들입니다(교회헌장 34, 사목헌장 38 참조). 그러므로 메시아적 백성이 된 신앙인들, 곧 교회는 “현실적으로 모든 사람들을 다 포함하지를 못하고 가끔 작은 무리로 보이지만, 그것은 전 인류를 위하여 일치와 희망과 구원에 가장 강력한 싹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생명과 사랑과 진리의 일치를 위하여 선정하신 이 백성을 또한 모든 사람의 구원을 위한 도구로 삼으시고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삼아 온 세상에 파견하십니다”(교회헌장 9).

 

우리 그리스도인은 누구를 탓하기 전에 자신의 잘못과 불성실을 반성하고 뉘우치며 수난 하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닮은 삶을 각오해야 할 것입니다. 구조악에 대항하여 비판하고 싸우는 것 못지 않게 자신과 사회 속에 숨어 있는 죄의 구조, 곧 이기심과 공명심, 권력과 재물에만 의존하려는 성향을 알아내고 불식시켜야 하겠습니다(사회적 관심 36참조). 우리는 무절제한 욕망과 부조리를 극복하고 정의와 진실, 공동선과 공공의 유익을 위해 헌신하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부활 축제를 지내는 의미이며 새로운 삶과 기쁨을 얻게 되는 길임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몇 일 후 제 17대 국회 의원을 선출하게 됩니다. 탄핵 정국과 정치적 소용돌이, 경제와 사회의 혼란 등 국가의 현실을 직시하며 자신을 성찰하고 파스카의 신비를 현실 생활 안에서 구현하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후보자나 정당을 선택할 때 자신의 이해관계나 취향에 따라 선정할 것이 아니라 ‘사회정의’ ‘경제정의’를 실현하고 공동선을 추구하는데 힘쓸 사람을 선택하여 투표해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객관적 검증을 철저히 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도 경청해야 합니다. 그리고 일어날 수 있는 이견과 갈등은 관용과 인내로 극복해 나아가야 합니다.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며 토론하고 협의하며 진리와 진실에 도달하도록 해야 합니다. 특히 신앙과 교회 공동체에 해가 되고 분열과 반목의 기회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복음의 진리 외에 다른 기준이 있을 수 없습니다. 정치, 사회, 경제 문제에 대하여 각자의 의견에는 다양성이 인정되어야 하며, 신앙과 교리,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뢰와 희망이 손상되지 않고 구세주 예수께서 원하시고 기도하신 일치 안에 머물러야 합니다(요한 17,11-28). 그러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새 계명이며 절대 명령인 사랑을 해치거나 저버리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이 길이 곧 교회가 가르치고 요구하는 다양성 안에 일치의 삶입니다.

 

오상(五傷)을 지니고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평화를 기원하시며 죄를 사하는 권한을 주셨습니다(요한 20,19-23). 그리고 하느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이 화해하고 화합의 길로 나아가게 하는 사명을 위탁하시며 당신 구원 사업을 계승하도록 파견하셨습니다(마태 28,18-20; 1고린 5,14-21). 이 일은 매일 미사 성제 안에서 재현되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 성체성사를 통해 그들의 소명을 확인하고 다짐하며 새롭게 파견을 받습니다(전례헌장 10, 106 참조).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2000년이 지난 오늘에도 현실이며 우리의 삶 안에 약동하고 있습니다. 삶의 새로움과 희망을 전해주는 이 축제가 우리에게만이 아니고 우리가 사는 이 사회와 나라에도 깃들도록 부활하신 주님께 기도하고 주님과 함께 하느님 아버지께 정성 들여 기도합시다: “이 땅에 참 평화와 기쁨, 정의와 사랑과 자유를 주십시오”하고. 

우리 믿음의 시작이요 완성이신 예수 그리스도(히브 12,2)의 은총와 축복이 우리와 이웃에게 가득하기를 축원합니다.

 

2004년 4월 11일 부활 대축일에

                       

천주교 광주대교구

교구장 최창무 안드레아 대주교